[데스크라인]영웅본색(英雄本色)

며칠 전 아주 익숙한 이름 '주윤발'이 온라인에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했다.

보잉 선글라스, 오버 핏의 바바리코트, 입에 문 성냥개비로 대변되는 그 배우다. 한번쯤 성냥개비를 입에 물어봤을 나이 때의 사람에게 그는 1980년대 영화 속 그대로의 히어로다.

그가 다시 화제에 오른 이유는 팬들과의 만남에서 전 재산인 56억홍콩달러(약 8100억원)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발언 이후 그의 검소한 일상도 다시 화제가 됐다.

한 달에 800홍콩달러(12만원)로 생활하고, 2년 전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전까지 17년 동안 노키아 휴대폰을 사용했다고 한다. 옷도 할인매장에서 구매하고, 주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를 홍콩누아르 영화의 최고 스타로 만든 건 1986년 영화 '영웅본색(A Better Tomorrow)'이다. 이후 '영웅본색' 시리즈와 '첩혈쌍웅' '도신' 등 영화로 승승장구하며 미국 할리우드까지 진출, 글로벌 스타가 됐다.

한동안 소식이 궁금하던 그가 천문학 규모의 전 재산 기부라는 소식과 함께 영웅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린 시절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그였기에 더 큰 감동을 주면서.

그는 전 재산 기부를 약속하며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알지만 쉽게 실천하지 못하기에 더 값진 말이다.

전성기를 지나 더 존경을 받은 배우는 또 있다. 오드리 헵번이다.

헵번 역시 유니세프 국제 구호기금으로 죽을 위기를 넘기던 어려움은 물론 나치 당원이던 아버지로 인한 슬픈 가족사까지 삶이 평탄치 않았다.

헵번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1950~1960년대를 관통하는 '만인의 연인'이 됐다. 그러나 그녀의 삶을 더 돋보이게 만든 건 은퇴 후의 삶이다.

은퇴 후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기아와 내전, 전염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돕는 자선 활동을 펼쳤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최고 여배우가 힘들고 어려운 길을 자처한 것이다. 유니세프에서 지원하는 공식 체류비 외 모든 비용을 자신의 개인 돈으로 지불하면서까지.

이런 활동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헵번은 “저의 희생이 아니라 제가 편해질 수 있도록 어린이가 제게 준 선물”이라고 답한다. 앙상한 아프리카 어린이를 안고 있는 노년의 여배우 사진이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다.

어느 고등학교 같은 반에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명문 의대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성적이 좋고, 나머지는 성적이 조금 떨어진다.

이들에게 어떤 의사가 되려는지 물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은 강남 성형외과 의사, 다른 한명은 여행하는 의사라고 답했다. 후자가 밝힌 여행은 치료 받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명문 의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전자가 더 높겠지만 누가 더 훌륭한 의사가 될지는 반대가 될 것 같다.

진짜 영웅은 많은 것을 이루는데 그치지 않는다. 쌓은 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가짜 영웅이 많은 시대, '더 나은 내일'을 찾는 내 영웅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