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일상의 일 대부분을 처리하고, 곁에 없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공간 제약없이 소통하고,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스마트 신인류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이 5000만대를 넘었다. 일상생활에서 워낙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보니 이제는 스마트폰을 배제하고 지내는 하루가 불가능에 가깝다. 업무와 일상 대부분이 작은 전화기 안에 들어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나 역시 스마트기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휴대폰과 탭을 통해 뉴스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검토한다. 스마트워치에 기록된 하루 운동량이 어땠는지, 목표량을 위해 얼마나 더 움직여야 하는지를 체크한 후 단체 대화방에서 동료 의원 토론을 지켜보다 사안에 따라 대화를 나눈다. 언급해야 할 공개 메시지가 있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기도 하고, 댓글과 쪽지로 전해 오는 국민 목소리를 청취한다.
과거에 통용되던 사회 문법이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 기기가 등장하면서 혁명과 같은 크나큰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외된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정치는 뛰어난 리더가 이끌고 가는 중앙집권화된 하향식 정치였다. 정보를 거머쥐고 있는 상위 소수의 의사 결정에 따라 구성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구조였다.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지도 않고, 구성원 간 의사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는 다르다. 사람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통해 연결돼 있고, 정보를 공유한다. 때로는 사회 구성원이 의사결정권자보다 정보를 더 많이 보유하고, 토론도 더 많은 사람들과 한다. 구성원의 판단과 결정이 최고결정권자 판단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지난 촛불혁명이 가까운 사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촛불시민들의 외침은 사회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하향식에서 상향식으로 크게 바꿨다. 그러나 아직 우리 정치는 변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 국가다. 정부와 의회는 국민이 위임한 권력에 기반, 국정을 운영한다. 그러나 초연결사회에서 시민은 더 이상 대의기관을 통하지 않더라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개인 SNS를 통해 입법을 요구하고, 사회 부조리를 밝히기도 한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절차가 복잡한 간접민주주의보다는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사회 요구가 분출하는 현상을 국회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의기관으로서 그동안 민의를 제대로 반영했는지,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어떻게 융합시킬 수 있는지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전자민주주의가 불러올 폐해도 간과해선 안된다. 국민 의사를 빠르게 반영하는데 효율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의 정보 독·과점, 가짜뉴스와 같은 잘못된 정보에 의한 민의 왜곡, 무분별한 포퓰리즘이 일어날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변화의 흐름을 제도로 수용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보완해야 할 책무가 있다. 국회의장 시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 이유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이 도입되더라도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잃어선 안 된다. 포노 사피엔스로 불리는 신인류와 변화에 뒤처진 구인류 모두 동등한 사람이며 공동체 구성원이다.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그것이 시대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불변의 민주주의 가치다.
정세균 (국회의원·전 국회의장) skchung@assembl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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