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프트웨어(SW) 기업 SAP가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SW 저작권 관련 국제 분쟁에서 일부 승소했다. 한전은 SAP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SW 현황을 전달해야 한다.
SAP는 표면상 소송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실제 재판소 판결을 이행할 기업이 한전이 아닌 한전KDN이기 때문이다. 한전이 SAP SW를 도입할 때 계약 당사자가 한전KDN이었다. 한전KDN은 한전 정보통신기술(ICT) 자회사다. 한전KDN이 법원이 정한 기한 내 SAP 측에 자료를 전달할지 미지수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은 최근 SAP가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SW 저작권 중재 요청에서 SAP 일부 승소했다고 판결했다. SAP가 2016년 초 중재를 요청한 후 2년 6개월 만이다.
당시 SAP는 한전이 사용하는 전사자원관리(ERP) 제품에 대해 감사를 받게 해 달라고 국제 법원에 중재를 요청했다. SW 기업은 자사 제품을 도입한 기업이 계약에 따라 정품을 바르게 사용하는지 감사로 확인한다.
SAP는 한전이 2005년에 SAP EPR를 처음 도입한 이후 10년 동안 한 번도 감사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9년 재계약 당시 '1년에 적어도 1회 감사를 진행한다'는 문구를 넣었지만 한전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SAP는 현재 한전이 사용하는 제품이 계약 당시 버전보다 약 10배 비싼 버전을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한전은 SAP가 2005년 계약 당시 '시스템 가동(Going live) 후 3년 동안 감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며, 3년 후 감사를 할 때 증가 인원만 대상이 된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용 제품 역시 계약에 적합한 정품이라는 입장이다.
법원은 SAP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SAP가 2009년 계약에 따라 한전이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한전이 사용하는 제품은 등급과 관계없이 사용 가능한 버전이라고 판결했다. SAP 주장처럼 10배 비싼 제품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한전은 SAP에 ERP 사용 관련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제출자는 한전이 아니라 한전KDN이다. 한전KDN이 한전ERP 도입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다.
한전KDN은 한 달 안에 한전이 사용하는 ERP 현황을 SAP에 제출해야 한다. 한전KDN이 제출하지 않으면 SAP의 추가 소송이 가능하다. 이제 소송 당사자는 한전이 아니라 한전KDN이었다. 법원은 또 SAP 소송비 3분의 2를 한전KDN이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일각에서는 판결 최대 피해자는 한전KDN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KDN이 한전이 보유한 ERP 현황 자료를 제출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면서 “한전은 제출 의무가 없기 때문에 한전이 한전KDN 측에 자료를 주지 않으면 추가 소송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선 SW 전문기자 river@etnews.com,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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