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호 공약 '을지로위원회' 사실상 폐기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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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인 '범정부 을지로위원회' 신설 계획이 사실상 폐기됐다.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만들어 관계 부처 의견 조회를 마친 지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내에서도 계획 폐기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정부 부처와 검찰·경찰이 참여하는 을지로위 신설을 기대한 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범정부 차원에서 갑을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당초 의지가 약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해 8월 1일 '국가을지로민생실천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이하 규정안)을 마련했다. 같은 달 3일 국무조정실 사전 규제 심사를 거쳐 7~16일 열흘에 걸쳐 관계 부처 의견 조회까지 완료했다.

규정안에는 관계 부처 인력 파견, 민간인 참여 등을 포함한 을지로위 설립 근거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규정안 처리 논의는 1년이 넘은 현재까지 '올스톱' 됐다. 공정위는 최근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국정과제 추진실적'에서도 관계 부처 의견 조회 이후로는 실적이 없는 것으로 기재했다. 이달 18일 정부는 이낙연 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경제민주화 국정과제 점검 및 향후계획'을 논의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인 을지로위 설치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참석자 전언이다.

규정안은 대통령령이어서 국회 동의와 관계없이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확정·시행할 수 있다. 을지로위 신설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 '정부 뜻'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소관 부처 공정위 내에선 을지로위 신설 계획 폐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당초엔 정부 소속 위원회 정비 작업 때문에 신설이 지연되는 것이라고 반응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어서 지금 을지로위를 신설한다고 해도 힘을 받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 복수 관계자는 “을지로위 설립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게 없다. 윗선 지시가 더 이상 없다”면서 “중단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을지로위 신설 계획을 폐기한 이유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운영하는 을지로위원회와 역할 중복 문제가 꼽힌다. 민주당은 2013년 5월 을지로위원회를 설립, '갑을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을지로위 신설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정부가 위원회를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을지로위 신설은 순위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는 정부가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을 너무 쉽게 폐기했다고 비판했다. 공정위가 갑을 문제 해결에 일부 성과를 냈고 공정위 내에 경제민주화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당초 계획한 범정부 차원 을지로위와 비교하면 위상·역할이 미약한 것으로 지적됐다. 실제로 공정위 경제민주화팀 역할은 각 부처 경제민주화 과제 취합·관리에 제한됐다. 정부 관계자는 “을지로위 신설 필요성을 두고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렸다”면서 “갑을 문제 해결은 여당이 운영하는 을지로위원회만으로 가능하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