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자료 제출 의무 담은 '산안법 개정안' 통과…업계 "취지 동감, 일반 공개는 우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 영업비밀 유출 논란을 일으킨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을 모두 정부에 제출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한 당초 우려보다 규제 강도가 완화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비공개할 수 있는 영업비밀 여부를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사전에 승인 받도록 하고, 일부 내용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해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여전히 제기됐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은 최근 변화된 산업 현장 현실을 반영해 법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의결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에 이목을 집중시킨 물질안전보건자료 문제는 다소 완화되는 쪽으로 정리됐다. 물질안전보건자료는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기재한 문서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모든 사업주가 자료를 작성해 사업장 내에 비치한다.

정부는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자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서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도록 의무를 새롭게 부과했다. 현행은 화학제품 양도 시 사인 간에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공하도록 돼 있다. 그동안 정부가 화학제품 제조와 수입 현황을 알기 어렵게 된 만큼 자료를 제출 받아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근로자 건강 장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또 물질안전보건자료 기재 대상을 국제 기준과 같은 유해·위험한 화학물질로 한정시켰다. 그동안 모든 구성 성분 화학물질을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기재해 온 우리나라는 유해성·위험성 물질만 기재토록 한 국제기준(유엔의 GHS분류체계 등)에 맞춘 것이다.

이와 함께 물질안전보건자료 가운데 구성 성분 명칭과 함유량을 비공개할 경우 노동부 장관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이 영업비밀 여부를 자의로 판단해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근로자가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산업계는 정부 개정안이 기존 우려 요소를 많이 완화했다는 점에서 안도했다. 당초 업계는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을 모두 정부에 제출하고, 이를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개정이 추진되자 기술 유출을 우려했다. 국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이 고스란히 노출될 경우 핵심 정보가 경쟁사에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안전보건자료 기재 대상을 유해물질로 한정한 점, 자료를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토록 한 부분에 대해서는 행정력이 소요되지만 필요성에 동감했다.

다만 영업비밀로 보호 받으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고, 물질안전보건자료 일부를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한 데에 대해서는 여전한 우려 목소리를 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영업비밀에 대한 결정을 고용부 장관이 하는 셈인데 영업비밀은 기업마다 업계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면서 “얼마나 합당하게 이뤄질 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자료 공개 대상이 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총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기업이 안전보건자료 자체를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근로자와 무관한 제3자가 볼 수 있는 건 문제”라고 전했다.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한 중요 정보가 홈페이지에 공개될 경우 경쟁국이나 경쟁 업체에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물질안전보건자료 비공개 요청이 기각되더라도 해당 기업이 인정하지 못하면 '이의 제기' 절차나 행정심판·소송 등을 통해 추가 논의하게 될 것”이라면서 “기업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국장은 또 “산안법 개정안 가운데 물질안전보건자료 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결정됐다”면서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산업계 등 추가 의견이 나오면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