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현명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뜻이다. 굴이 여러 개 있는 토끼가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쉽다. 다양한 대안으로 위기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스포츠 팀에서 주전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부상이나 결장 시 뒷받침해 줄 선수층이 얇다면 장기간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 경제를 보면 또 다른 굴의 부재가 아쉽다. 지표상 호황에도 '반도체 착시 현상'이라는 분석이 연일 나오고 있다. 전체로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도체 산업을 빼면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은 549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월별 수출 규모 가운데 역대 두 번째 성적이다. 수출 성장을 이끈 반도체 산업 의존도도 올라갔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15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2%나 증가했다. 전체 수출액 가운데 21.1%를 차지했다. 반도체 산업 비중은 지난해 10월 이후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에 힘입어 안정을 되찾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4분기부터 반도체 사업이 하향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 상황에 따라 전체 경제 상황이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반도체를 뒷받침할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디스플레이, 자동차 모두 이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뿌리가 되는 기계 산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이 제조업 위기에서 벗어난 원동력도 기계·소재 등 뿌리산업이었다. 기계 산업은 특성상 변동 폭이 적은 반면에 성장세가 꾸준하다. 이를 바탕으로 수출 규모 2위로 올라선 뒤 올해 사상 처음 수출액 500억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제조 디지털화 추세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어 전망도 어둡지 않다. 그만큼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져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