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된 전력을 생산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 산업 고도화와 전력 사용량 확대 등과 맞물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활용이 늘면서 ESS가 주목받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을 이용하는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생산과 공급 변동성이 심하다. 공급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를 안정감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력 생산이 많을 때 저장해 두었다가 전력 생산이 부족할 때 이를 꺼내 활용하는 ESS가 필수다.
활용도가 높으니 성장성도 높다. 세계 ESS 시장 내년 규모는 올해보다 40% 성장한 17GWh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와 호주 등지에선 ESS 설치가 의무화된다.
성장성이 유망하니 시장에 쏠린 관심도 뜨겁다. 구글, 테슬라, 애플,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공룡 기업이 ESS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
주목할 것은 현재 ESS 시장 선두 주자가 국내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하나금융투자 분석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은 삼성SDI 43%, LG화학 37%, 중국 BYD 13% 순으로 예상된다. 시장에 조기 진출하고, 기술력을 높이면서 중국 업체와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시장에 뛰어드는 글로벌 공룡 기업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추진되고 있다. ESS 산업을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는 방안이다. ESS는 중소벤처기업부에 지정 품목으로 건의됐다.
성장성이 유망한 데다 글로벌 공룡 기업이 뛰어드는 시장인데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구글, 테슬라 등은 이제 막 ESS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앞서 있는 삼성SDI와 LG화학도 자칫하다가는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 열심히 뛰라고 독려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 과연 이것이 합리 타당한 정책인지 의문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ESS 시스템은 배터리,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전력변환장치(PCS), 전력관리시스템(PMS), 수배전반, 변압기 등으로 구성된다. 또 한 번 설치하면 장기간 유지보수가 필요한 만큼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 역량으로 이 모든 분야 기술을 갖추는 것도, 장기간 유지보수를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국내 시장에 국한된 조치라고 의미를 축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ESS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 가운데 하나다.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나 된다. 특히 최신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어 신기술을 테스트하는 데도 최적이다.
중소기업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 취지를 살리려면 꼭 필요한 곳에만 적용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신청했다고 해서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외면한 채 지정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과거에도 중소기업 보호에 매몰돼 더 큰 것을 놓친 적이 있다. 센서와 발광다이오드(LED)를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국내 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ESS에 중소기업을 키우고 싶다면 중소기업에 있는 강점 또는 중소기업 육성 분야로 한정해야 한다. 중소기업 육성만 신경 쓰다가 글로벌 시장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면 안 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넓은 시야가 필요한 때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