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소기업간 경쟁제품 추가 지정을 둘러싸고 관련 업계가 시끄럽다. 국내 중소기업과 국산 기술을 보호하고 육성한다는 훌륭한 취지로 제정된 이 제도에 왜 지금 갑론을박이 오가는 것일까.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은 서버 제품군이다.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속도에 따르는 제한을 내년부터 'x86 아키텍처 기반 2소켓 이하' 제품으로 확대하자는 중소기업중앙회 신청에서 비롯됐다. 서버가 정보기술(IT) 인프라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며, 2소켓 이하 제품이 전체 공공 시장 x86 서버 가운데 97%(판매 대수 기준) 차지하는 만큼 이번 결정으로 업계에 미칠 영향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업계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이번 확대 신청이 국산 서버 생산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서버 제조업체가 생산하는 제품은 중국이나 대만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 생산하는 것으로, 국산화 독자 기술이 적용됐다고 보기 어렵다.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내 기술이 이들 서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형평성 문제도 지적된다. 당장 이번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글로벌 서버 제품을 다루는 국내 중소 유통 및 유지보수 업체 등이 직접 타격을 받는다. 타격 받는 업체 수는 수천에 이른다. 이들 국내 업체는 글로벌 기업 제품을 취급하며, 서버 운영이나 유지보수와 관련해 세계 수준 기술을 이전 받았다. 외산 부품을 조립해서 판매하는 일부 업체 이득을 위해 글로벌 브랜드를 취급하는 수많은 국내 유통업체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 사안은 서버 제품을 유통하는 중소기업 1차 피해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서버는 IT 인프라의 핵심 요소다. 단순한 데이터부터 가장 까다롭고 민감한 정보가 담긴 업무까지 모든 IT 워크로드가 처리되는 장비다. 서버 장애는 곧 업무 마비를 의미한다. 서버 안정성이 중요한 이유다.
중국산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해 생산한 제품과 글로벌 브랜드에서 사전 검증 및 테스트를 마친 제품 가운데 어느 쪽 안정성이 더 높을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공공기관은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업무 성격과 중요도에 따라 서버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중기간 경쟁제품 확대 지정은 이러한 선택권 자체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우수한' 서버는 단순하게 하드웨어(HW)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앞에서 얘기한 안정성 외에도 사이버 보안 기술 또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이를 제품 아키텍처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개발 역량 등이 평가 요소에 포함된다. 최근 인텔 CPU나 지난해 플래시 메모리 부족 등 공급 차질에 대비할 수 있는 원활한 공급망 관리 또한 중요하다. 여기에 유지보수 정책과 서비스 품질까지 더해 '우수한' 서버는 HW, 소프트웨어(SW), 서비스를 아울러 모든 역량을 제대로 갖출 때 탄생한다.
최근 기업은 물론 중앙정부와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앞 다퉈 인공지능(AI), 기계학습, 빅데이터 등을 내세운 4차 산업혁명 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데이터 처리와 분석이 핵심을 이루는 4차 산업혁명은 고성능, 고가용성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결국 우리 공공기관의 디지털 혁신이 중국산 부품 조립 서버로 발목 잡히는, 뼈아픈 판단 착오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오늘날 IT 인프라는 업무를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니다. 한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 역량이자 경쟁력이다. 특정 협회나 일부 이득에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전체의 미래 역량을 헌납하지 않길 바란다.
이영섭 AIS테크놀러지 대표이사 charles@aisn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