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실패를 불러오고 실패는 성공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하던 선배 교수의 독특한 논리에 빠져든 적이 있다. 성공에 안주해서 노력을 멈춘 사람과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의 비유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정보기술(IT) 경쟁력, 전자정부 평가지수, 경제성장지표 등에서 승승장구하던 우리나라가 지금만큼 위태로운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만 보고, 듣고, 해석하는 인간 본능을 깨고 현실을 직시할 때다. 우리 경제가 아직은 버틸 수 있다는 발표는 긍정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보통신기술(ICT)의 경제 기여도가 확대되고, 정부의 전자정부 도입 전략이 기업 노력과 맞물려 오늘을 만들었지만 더 큰 이유는 대통령 관심과 지원이었다. 스스로를 IT 대통령으로 자처하고 항상 언급할 정도의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전 정부 IT 업적 파괴로 퇴색된 면이 있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핵심이 여전히 IT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 정부의 4차 산업혁명과 IT 발전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는 부족해 보인다. 남북 평화를 최우선에 둔 이유겠지만 경제가 퇴보하면 그만큼 평화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부 대기업이 씌워 놓은 경제 성장의 가면을 벗고 대기업 위주 산업 구도를 중소기업 중심의 IT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삼성반도체를 제외한 성장 지표의 하락, 국내총생산(GDP) 대비 44.3%에 이르는 10대 기업 매출, 15%를 넘나드는 한국 경제의 삼성 의존도는 늘 불안하다. 물론 우리나라 대기업이 계속 성장하기를 원하지만 국가가 일부 기업에 의존한 채 끌려가기에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미국, 일본의 1위 기업 의존도는 6%를 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제조업을 지능화하고, 중소 전문 기업 중심의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게임, 소프트웨어(SW), 3D프린팅, 미디어 등 열린 플랫폼 기반의 기술 집약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 개발 위주 정책이 시장 확대 전략으로 발전하는 것은 고무되는 일이다. 사실상 시장 투자는 실패 위험이 크고 실적 도출 가능성은 미미해 실적 평가가 우선인 정부 정책에서 외면돼 왔다. 정부 평가제도 개선으로 시장 투자를 확대하고, 시장 육성 정책을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과감함이 전제돼야 한다. 기술의 시장 진출 걸림돌인 규제를 폐지하는 혁신도 필요하다.
정부 정책이 명확하게 국민에게 제시돼야 한다. 1년 후 정부가 지향하는 시장, 5년 후 정부가 추진하는 기술 및 경제 형태를 국민과 공유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앞으로 국민 지지를 받지 않는 '나 홀로 정책'은 성공이 어렵기 때문이다. 매년 실적을 정산하는 방식을 다양한 평가제도로 혁신하고, 실수를 질책하는 감사를 축소함과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공무원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맞아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 전유물이 아니다. 과거 IT 일등 국가에 도취해 '성공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려면 우리 현재를 직시하고 시장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승자 독식의 IT 기반 사회에서 보장된 성공은 없다. 면피와 인기몰이보다 지속 성장을 위해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급변하고 있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