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한민국 VR산업, 어디로 가시나이까

[기고]대한민국 VR산업, 어디로 가시나이까

1990년대 초반에 게임 산업 주무 부처는 '체신부'였다. 우편 업무를 전담하는 체신부와 게임 산업 접점이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게임 산업에 대한 국가 고민도 존재할 수 없었다.

게임물 심의는 문화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받아야 했다. 체신부는 물론 정부 어느 부처에도 게임물 심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 주무 부처는 체신부인데 사업하기 위한 심의는 문화부에서 받아야 했다.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상현실(VR) 산업이 그렇다. VR 산업 환경은 산 하나를 넘으면 큰 강물이 앞을 가로막고 그 강을 건너면 태산이 앞에 서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주무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고 심의 기구는 문화체육관광부다. 광고물도 심의필 도장을 받아야 하는 복잡한 그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 정부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고 기회비용을 강제로 부담시키게 한 상황이 VR 산업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현장에서 절감하고 있다.

VR 산업은 부동산, 공간설계, 하드웨어(HW) 설계와 제작, 영상물과 게임물,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 운영 솔루션 등 소프트웨어(SW)가 필요하다. 공간 디자인, 조형 디자인, 오프라인 서비스, 금융 등 다양한 분야도 융합돼 만들어진다. 4차 산업혁명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산업 간 융·복합을 통한 새로운 콘텐츠와 고부가 가치 창출'에 일치한다.

4차 산업혁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체감할 수 있다. 일반인이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4차 산업혁명 마중물 기능을 능히 해낼 수 있다.

그러나 VR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관련 기관의 다양하고 복잡한 심의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면적에 따라 판매시설, 운동시설, 기타유원시설, 일반유원시설 등 건축물 허가 기준이 다르다. VR 콘텐츠에 기초해 운동성이 현저히 제한된 기기임에도 관광진흥법에 기초한 야외 테마파크 안전성 검사 기준에 따르는 안전성 검사를 마쳐야 한다.

VR 테마파크에서 VR 게임물을 제공할 경우 공간이 완전히 분리된 복합게임물제공업 등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는 VR 테마파크에서 왜 웹툰을 서비스하느냐며 관련 부처가 혼쭐이 나는 장면을 봤다.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즐기는 웹툰과 제작 기법, 서비스 방식 자체가 다른 VR 툰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했다. VR 산업 개념이 없음을 단편으로 확인한 것 같았다.

얼마 전 정부 부처에서 VR 산업 육성과 진흥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회의에 참석, 의견을 개진했다.

나는 “기업은 정부 진흥 정책을 바라지 않는다. 일정 규제 기준이 필요한 것도 공감하고 인정한다. 규제가 더 까다롭고 어려워지는 것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다만 제발 규제를 한 곳에서 원패스로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규제 합리화, 일원화만으로도 충분한 진흥이 된다. 구글이 독식하는 모바일 게임처럼 VR 콘텐츠 유통 플랫폼은 미국 스팀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VR 산업을 육성하면서 VR 영상물과 게임물 등 콘텐츠 등급 분류 기준을 준비하지 못하면 스팀이 VR 산업 구글이 되도록 대한민국이 미는 것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 게임 산업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산업 변화 과정을 현장에서 함께해 왔다. VR 산업 성장 과정 또한 척박한 게임 산업 성장 과정과 다르지 않다.

VR 산업을 PC방과 같은 'VR방'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크나큰 오판이다. 산업 정책에서 오류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VR산업 특별법을 제정하더라도 진흥은 바라지 않는다. '규제의 상식화, 합리화, 일원화'를 원한다.

정철화 GPM 부사장 nick@gp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