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와 통신사 간 인수합병(M&A) 소문이 무성하다. 방송과 통신 간 융합은 별개로 운영되던 규제 기관 통합, 케이블TV 사업자 초고속인터넷과 통신사업자 IPTV에 의한 시장 상호 진입, 서비스를 할인된 단일 요금으로 묶어 경쟁하는 결합판매 경쟁 단계를 거쳐 기업 합병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10여년에 걸쳐 다채널 유료방송 시장은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에 의한 무한경쟁 결과 가입 가구 수 3195만가구(2018년 상반기 평균) 규모로 괄목 성장했다. 반면에 케이블TV는 2009년 1500만명을 기점으로 감소세를 보이는 등 대조된다. 케이블TV 사업자는 오랜 기간 지역성 구현, 지방 정치 견제, 안테나를 대신한 지상파 중계라는 중요한 역할과 더불어 지역 기반으로 상당한 수익 독점력을 누려 왔다. 그러나 지연된 디지털 투자와 방송·통신 결합판매 시장 혼탁으로 산업 활성화라든가 '원케이블'과 같은 통합화 노력에도 무소불위 지위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방송·통신 양 진영 간 짝짓기가 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게 M&A 이슈에 매몰돼 케이블TV 핵심 가치인 지역성 구현이라든지 이를 차별화 발판으로 활로를 찾아본다든지 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성은 단지 '같은 동네 사는 낯익은 안경방 아저씨가 TV에 나왔네!' 하는 정도의 시시한 것일까.
필자는 일본 케이블TV 시장 현장 방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나가노현 '구라이트(Goolight)'를 방문했다. 이 회사는 200만가구가 거주하는 현을 커버하는 8개사 가운데 하나로, 2만9000가구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사업자다. 그럼에도 4K 기술 구현, 광케이블 포설 같은 네트워크 측면은 물론 지역 기반 콘텐츠를 제작하는 지역성과 이를 국내외로 전파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을 구현하고 있다.
장수마을 비결을 건강 식단의 조리 비결에서 찾아내고 외국인 거주자 서정 생활을 영상에 담아 수출한다. 폭 5㎝ 탄성밴드 위에서 줄타기 묘기를 보이는 '슬랙라인(slackline)' 세계 대회는 NHK를 통해 전국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세계로 방송된다. 매년 미술과 대학생을 초청해 마을 기반 시설을 그림으로 꾸미거나 지역 특산물 상표를 디자인하도록 하는 협업은 대만으로도 확장됐고, 지역 행사의 국내외 홍보방송은 지방자치단체 관광 정책과 연결된다.
돈이 될까? 홍보는 될지언정 돈이 될 리 없다. 임직원이 고작 30명이니 일이 고된 것은 물론 멀티태스킹은 필수이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임직원이 직접 제작한 고장의 소소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나가는 것에 자부하면서 일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취업 빙하기 학생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자체제작(DIY) 글로컬 콘텐츠 확산과 공감을 얻기 위한 토크쇼 등을 기획해 봤기 때문에 이들의 고충과 즐거움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은 방송과 통신을 가르는 벽이 여전히 높고 분권 역사를 경험한 적도 있어 지역 마인드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우리와 다르다. 그러나 일본도 몇 년 안에 방송·통신 융합으로 급변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일 수밖에 없다고 마루야마 야스테루 구라이트의 대표는 말한다.
어려우니 빨리 넘기고 이기려면 가입자도 빨리 늘려야 하니 일단 사고 보자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방송·통신 이해 당사자와 정책 입안자가 케이블TV 존재 의미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도 원점에서 고민해 봤으면 한다.
이내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nclee@hans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