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세우기···한미FTA '암초' 아니다

[이슈분석]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세우기···한미FTA '암초' 아니다
[이슈분석]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세우기···한미FTA '암초' 아니다
[이슈분석]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세우기···한미FTA '암초' 아니다

동일한 규제를 국내 기업에 적용하고 해외 기업에는 적용하지 않는 '인터넷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한미FTA'라는 암초에 부딪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을 겨냥한 규제 정책이 한미FTA 규정을 위반하고 자칫 통상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이 FTA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마찰이 있더라도 국익 차원에서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 안팎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한미FTA, 왜 쟁점인가

한국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이 미국 인터넷 기업을 부당하게 차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이용자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한미FTA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 같은 주장은 '한미 통상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모호한 표현으로 정부 안팎에서 지속 제기됐지만 표면으로 불거진 것은 주한미국대사관 공식 발언 이후다.

주한미대사관은 지난 달 인터넷 규제 관련 토론회에서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피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다”고 공개발언하며 한미FTA 문제에 불을 지폈다.

하루 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국내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한미FTA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며 재논의하기로 했다.

쟁점은 서버설치 의무화와 국내대리인 지정 의무화 법률안이다. 규제 반대 진영은 두 법률안 모두 한미FTA 12.5조 '현지 주재 의무 부과 금지' 규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서버나 대리인이 '현지 주재'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국내 이용자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면 개인정보가 저장되기 때문에 수사기관에 의한 검열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면서 이용자 불편은 물론이고 빅데이터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역차별 해소 움직임이 정책으로 구현될 단계에 이르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 인터넷 산업계가 미국 정부에 구조요청(SOS)을 보낸 것이란 해석이다.

◇“한미FTA는 인터넷 역차별 해소와 무관”

정부와 국회는 역차별 해소 정책이 한미FTA를 위반할 소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무엇보다 '서버설치 의무화'에서 염두에 둔 서버란 '캐시서버'를 지칭하는 것으로 규제 반대 진영이 우려하는 일반 서버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저장 위치를 선택하는 것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 자유이며 국내에 캐시서버를 설치함으로써 속도향상 등 이용자 편의성이 높아진다고 역설한다.

한미FTA 제12.5조는 국경 간 서비스 공급(인터넷 등) 조건으로 대표 사무소, 기업 지사를 설치하거나 상주 직원을 두도록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서버는 '물적설비'로 대표 사무소나 기업 지사와 무관하고 개인이 일정한 장소에 머무는 '거주'와도 관련이 없어 결국 한미FTA 제12.5조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한미FTA 유보조항(부속서Ⅱ)에는 '필요 이상으로 교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경우 디지털 콘텐츠 이용가능성을 증진하는 조치를 채택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캐시서버는 '콘텐츠 이용가능성을 증진하는 조치'에 해당한다는 게 국회 판단이다.

서버를 설치함으로써 국내외 사업자간 차별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존재하던 차별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내국민대우와 최혜국대우를 명시한 WTO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에도 부합한다는 게 국내 법조계 분석이다.

국내대리인 지정 역시 기업 직원 상주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대리인'을 두는 것에 불과해 한미FTA 제12.5조와는 무관하다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국내 법무법인이나 전문가를 대리인으로 지정하면 상주 직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용자 민원 해결, 규제 대응에도 도움이 된다.

◇국회, 법률안 밀어붙일 듯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을 주도하는 국회는 한미FTA 위반설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문화주권'과 '국익' 차원에서 지속 추진할 방침이다.

박선숙 의원(바른미래당)은 “주한미대사관이 해외사업자 국내 서버설치 문제가 한미FTA와 상충될 수 있다는 주제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매우 부적절하다”면서 “만약 의견이 있다면 외교부를 통해 전달할 문제로 FTA와 상충하는지는 국회가 논의할 문제”라고 못박았다.

김경진 의원(민주평화당) 역시 “인터넷 역차별 해소는 문화주권, 경제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라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면서 “서버설치 의무화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 규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신중한 입장이라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한미FTA에서 협정국 기업에 대해 국내 대표사무소를 두도록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면서 “국내대리인 지정 의무화 법률안이 통과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실익과 초래될 수 있는 무역, 외교적 문제를 두루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