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고용에 있어 '최악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연초부터 불안하던 고용상황은 연말까지 악화일로를 걸었다. 정부 내에선 “매달 통계청이 고용동향을 발표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라는 평가마저 나왔다.
인구구조 변화, 제조업 구조조정, 서비스업 부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기업 위축'이 핵심이라는 게 공통 지적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이 여기에 방점을 찍고 고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09년 이후 '최악 일자리 성적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임기를 마치며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아쉬운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일자리”라고 답했다.
기재부 직원에게 보낸 이임사에서도 “일자리가 많이 늘지 못했고 소득분배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면서 “실직 공포와 구직난에 맞닥뜨린 근로자와 청년, 생존 위협을 느끼는 자영업자, 나아지지 않는 경영성과에 걱정을 달고 사는 기업인, 그분들 어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토로했다.
김 전 부총리 발언대로 1기 경제팀 일자리 성적표는 낙제점 수준이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폭은 지난 2월 10만4000명을 기록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5월에는 7만2000명, 7월과 8월에는 각각 5000명과 3000명 증가에 그쳤다.
고용지표 조사 대상인 '15세 이상 인구'가 전년대비 매달 20만명 이상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취업자는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한 셈이다. 작년 가장 낮았던 취업자 증가폭이 20만8000명(8월)이었고, 연평균 31만6000명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 고용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은 10만명 전후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8만7000명 감소)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실업자 수는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 연속 100만명대를 보였고 10월과 11월도 각각 97만명, 90만명을 기록했다.
업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했고, 각종 일자리 정책에 52조원을 투입한 점을 고려하면 크게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난은 자주 거론되는 문제지만 올해는 유독 심각해 보인다”면서 “정부 대책이 무슨 효과를 냈나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제조업 위기, 부진한 서비스업…근본 문제는 뚝 떨어진 기업 활력
고용난 바탕에는 인구구조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예년만큼 늘지 않으면서 취업자 증가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구조 변화만으로는 최근 일자리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고용난 주요 원인으로 '제조업 위기'가 꼽힌다.
조선업 구조조정, 자동차 산업 불황을 중심으로 제조업 전반에 어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1~9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8%로 같은 기간 기준으로 1998년(66.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자동차, 조선 등 고용효과가 높은 주력산업이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군산 등 주요 산단도 활력이 저하된 상태”라면서 “미중 통상분쟁 등 대외 요인과 더딘 산업구조 전환 속도 등 구조적 요인도 단기간 내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조업 위기는 고용난으로 직결됐다. 제조업 취업자 증가폭은 1월 10만6000명, 2월 1만4000명, 3월 1만5000명 증가를 기록한 이후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6~8월 3개월 연속으로 제조업 취업자 감소폭은 10만명대를 기록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기대만큼 늘지 않으며 서비스업도 부진한 모습이다. 지난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급감했던 중국인 관광객은 올해 다시 유입 추세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여기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서비스업이 직격탄을 맞아 어려움이 가중됐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소상공인 업종 취업자 수가 크게 줄었다”면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문제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난 원인은 업종별로 다양하지만 기업 활력이 떨어진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최근 경기가 둔화 국면에 진입했고, 내년엔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채용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12월 전망치는 전달보다 1.7포인트(P) 하락한 88.7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1월 BSI는 74로 한 달 전보다 1P 상승에 그쳤다. BSI가 100보다 낮으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내년 고용 전망도 우울…결국 열쇠는 '기업'
내년에도 일자리 상황은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기 전반이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월평균 취업자 증가폭을 7만명으로 예상했고, 내년에는 이보다 소폭 개선된 10만명 내외로 내다봤다. 내수 경기가 둔화되고, 대외 수요 증가세도 완만해지면서 실업률은 올해와 동일한 3.9%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는 해결책이 결국 '기업'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일자리 확대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해 민간에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부도 같은 인식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최우선 과제로 '전방위적 경제활력 제고'를 꼽고 이를 바탕으로 일자리 정책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홍 부총리는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간이 시장에서 의지와 의욕을 갖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기업 활동을 하도록 정부가 세심하게 뒷받침하겠다”면서 “우리 경제 활력을 되찾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작업에 경제팀 1차 역량이 집중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도 지속 투입할 예정이다.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내년 세출예산(일반·특별회계 총계기준) 70.4%인 281조4000억원을 상반기에 배정했다. 특히 양질 일자리 확충, 일자리 질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예산을 상반기에 78% 투입할 방침이다.
다만 업계는 종전의 '돈 풀기' 방식만으로는 일자리 해결 어려움이 입증된 만큼 규제혁신 등으로 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기업 경영환경을 개선하면 일자리 창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면서 “단기 효과만 기대할 수 있는 직접 재원 투입 방식보다는 제도 개선, 규제 혁신 등으로 기업 투자와 창업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