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20개월째다. 임기가 총 60개월이니 딱 떨어지는 삼분의 일 지점이다.
작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는 개문발차했다. 촛불이라는 역사적 이벤트에 추동돼 준비 기간 하루 없이, 보따리 하나 들고 텅 빈 청와대에 홀로 들었다. 선거과정에서 민주당이 만든 공약 '나라를 나라답게'와 치열한 각축으로 만들어진 구두공약 '내 삶을 바꾸는 공약'이 있었으나, 설계도보다는 개념도에 가까웠다.
대통령도 역설했듯 이 정부 출범은 촛불이다.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고르게 나온 것도 촛불의 규모와 강도가 강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요구를 담지하고 출발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5·18연설과 광화문연설 등 이후로도 끊임없이 촛불국민의 위대함과 그들의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을 결기어린 표정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촛불의 명령' 하나만 들고 들어간 문재인 정부가 모든 일을 장터마당 약장사처럼 능란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선거공약을 정밀한 국정과제로 변환하고 인사와 정부조직을 설계하기도 전에 국정을 집행해야한다는 수단적 어려움이 다가 아니었다. 촛불공약인 국정과제 100개는 하나 같이 개혁 요소가 다분했다. 집행할 공무원 조직도, 입법화해야 할 의회도 익숙하지 않았다. 경제정책이 대표적이다.
선거과정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린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는 민주당의 강령과 '을지로위원회' 공약 그리고 촛불구호를 결합했다. 일자리를 위한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으로 불렸다. 한국경제 구조적 모순이라고 여겨졌던 저성장과 양극화, 재벌과 기업규모 격차에 따르는 불공정을 정정하려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수많은 공격과 오해를 받았다. 본래 케인즈주의 총수요관리정책 일환이었던 국민소득보장정책은 그 유명한 뉴딜정책부터 전통 있는 정책이었다. 불평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면 그야말로 다목적 정책이 될 수 있다. 세부정책 선후관계나 규모는 둘째 문제다.
부작용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사이에 근본 문제는 묻혀갔다. 재정지출 규모와 방향, 이를 위한 조세 원리가 그것이다. 본래, 국정과제에서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두자고 했던 것은 재정계획을 어떻게 하면 근본적으로 개혁할지를 검토하자는 것이었지, 세율 한두 가지를 손보자는 것은 아니었다. 혁신성장은 방향이 묘연해졌다. 경제운용 중심을 재벌·대기업에서 중소·벤처기업으로 바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이중성을 개선하고 지역 균형을 잡으며 이를 통해 잠재 경제성장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신설부처가 중기부 하나인 이유다. 혁신성장이 규제완화나 기술혁신 혹은 4차 산업혁명으로 규정될 일이 처음부터 아니었다. 다 자란 대기업은 대견스레 놓아두고 이제부턴 새싹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준비기는 이렇게 지나갔다. 다소간 혼란은 불가피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국정 청사진을 포용국가로 정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곳을 포용하도록 국가운용을 하자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 수도권이 아닌 지방, 중소기업, 자영업자, 나아가 북한까지도 보듬어 안자는 의미다. 길 떠나는 새벽에 온전히 준비할 수 없었다면 걸으면서라도 부족했던 준비를 하고 다시 추스른들 어쩌겠는가. 씨를 뿌리다가도 무너진 논두렁은 고쳐야 한다.
내각 교체와 더불어 2기 경제팀이 새로 꾸려졌다. 신임 경제부총리는 오랜 경륜도 있지만 이번 정부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자문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누구보다 '촛불공약'을 잘 아는 터다. 씨 뿌리며 한두 번 넘어졌으면 어떠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정성껏 가꿔야 한다.
이한주 경기연구원장(가천대 부총장) jopele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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