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찾아온 벤처 붐은 들불처럼 번졌다. '국가가 엔젤이 되겠다'는 정부의 벤처기업정책, 벤처캐피털, 기술력을 갖춘 청년사업가 세 부문이 혼연일체가 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갔다.
그 결과 국가는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 매출액 1조원을 기록하는 벤처기업이 다수 등장하면서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블록체인 열풍이 분다.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 기술이자 제2의 인터넷이라 일컬을 수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와 더불어 미래를 선도할 핵심 기술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2025년까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2022년까지 블록체인 기술 수준을 선진국 대비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블록체인 산업 육성대책'을 발표, 산업 발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혼동해서 암호화폐는 규제하고 블록체인은 진흥시킨다는 잘못된 투 트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지난해 하반기에 불던 가상화폐 투기 열풍에 놀란 측면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바탕에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분리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책 판단이 깔려 있다. 그나마 모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분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퍼블릭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아직도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암호화폐 필요성을 퍼블릭 블록체인에서의 채굴 보상금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구축하는 미래 산업의 모습은 디지털 자산의 세상이다. 디지털 자산이란 가치 있는 데이터를 의미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 스마트계약, 스마트자산, DAO라는 네 가지 기본 기능을 활용해 디지털 자산 세상을 실현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블록체인 플랫폼 기반으로 구현되는 경제 생태계를 우리는 블록체인 경제 또는 토큰 이코노미라고 이야기한다. 암호화폐는 단순히 퍼블릭 블록체인에서의 채굴 보상금 역할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경제에서 '지불수단'이라는 핵심 역할을 한다. 궁극으로는 암호화폐 없이는 블록체인 경제가 활성화될 수 없는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불투명성, 해킹, 투기, 자금세탁, 탈세 등 역기능 문제는 암호화페를 제도권으로 끌어올려 효과 높은 규제 대상으로 편입시킴으로써만이 해결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신기술과 신시장에 대한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 제도 도입의 부작용과 역기능에 두려움이 앞선다면 항상 후발 주자일 수밖에 없다. 선두 주자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이 없다면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이라도 해야 한다. 스위스의 추크, 에스토니아의 블록체인 스테이트와 전자시민권,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크게 뒤떨어지는 위험은 벗어날 수 있다.
금융위원회 직원 스스로가 경쟁력을 비관하거나 세계 80위권인 한국 금융 경쟁력을 극복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블록체인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멀고 먼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든 정책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의 양면성이 있다. 역기능만을 부각해서 규제하는 것은 가장 쉬운 정책이면서 가장 어리석은 정책이다. 지금이라도 관련 부처 공무원은 책임의식을 발휘해서 제도 도입에 따른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가동한 다음 가장 적합한 정책을 선택,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서령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사무총장 esr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