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첨단 산업기술 유출을 둘러싼 법률 관점과 재발방지대책

정진섭 변호사
정진섭 변호사

삼성에서 개발된 '에지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이 협력업체를 통해 중국에 유출, 검찰이 관련자 다수를 기소했다는 언론 보도가 최근 있었다. 30년 동안 돈독한 관계에 있던 협력업체 임직원이 형사 고소에 이른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렵지만 공익을 대표하는 검찰이 국가 중요 기술에 대한 해외 유출 사범에 엄정 대처하는 것은 민간 기업이나 근로자 입장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세계 최첨단 기술이거나 국가 안위를 좌우하는 중요한 국책 기술의 경우 국가 전략 차원에서 기술 유출 방지 대책 강구는 당연한 일이다.

때마침 국회도 최근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했다. 영업비밀 보호 요건으로 '합리 타당한' 보안 노력을 필요로 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징벌성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영업비밀 보호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입법 개정을 했다. 법원도 대체로 엄벌주의에 입각해서 특허법 위반이나 부정경쟁방지법만이 아니라 국가 핵심 기술의 경우 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 의한 가중 처벌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형법의 업무상배임죄까지 적용해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잠시 생각해 보자. 설령 엄벌주의나 권리자 보호 강화를 위한 입법이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다 해도 그것만이 전부일까. 혹시나 '자유'와 '창의'가 흘러넘쳐야 하는 과학기술계에 과도한 법 잣대를 들이대고 규제를 가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은 비단 어제오늘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일찍이 1990년대 초반에 특허청 중심으로 영업비밀보호 입법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입법 검토를 시작할 때부터 논의된 화두다.

어떤 사건이든 옥석은 분명히 가려야 한다. 예를 들어 후발 외국 기업의 불법 인력 스카우트가 수반된 악성 침해 행위라면 형사 고소만이 아니라 전직금지 가처분 등 민사상 긴급 조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유출됐다고 주장되는 기술의 주요 부분이 국내외에 이미 공지된 기술로 밝혀진다거나 불법 이득을 취득한 것이 없다거나 피해 업체에 손해를 가할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경우에 따라 그런 공지의 기술 수출은 오히려 국가 차원에서 권장할 만한 정당한 산업 기술 수출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형사사건에서 모든 거증 책임은 '무죄 추정 원칙'에 입각해 검사에게 귀속된다.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은 죄형법정주의와 적법 절차 원칙을 잘 지켜 국민의 기본 인권을 최대한 보장할 책임이 있다. 판결 결과에 따라 한 개인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고, 수많은 직원과 가족의 생계가 달린 기업의 존망까지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 필자의 변론 경험에 비춰 보면 한때 가깝게 지낸 종업원이나 협력업체 임직원과 오해, 갈등 대립이 극에 달해서 형사 고소까지 치달아 재판에 회부된 사례가 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의 기술 이해 부족으로 사실관계를 오판해 잘못 기소하고,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 본질을 침해하는 등 무리한 고소 사건이 적지 않았다.

과학 및 기술 분야는 '진리'와 '진실'이 지배하는, 즉 인재 제일과 합리 추구가 기본이 돼야만 하는 세계다. 그에 비해 법률 세계는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절차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실체적 진실'이란 사실과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법관 면전에 제출한 객관화된 증거에 의해 '입증 가능한 진실'을 뜻한다. 이에 따라서 기업의 사활이 걸린 첨단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사후 및 타율 수단인 민·형사 소송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사후 단속 및 처벌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에 앞서 예방 자율 조치가 더욱 효과 높고 현명한 길이다. 그것은 오로지 우수 인재의 애국심과 애사심을 고취하고, 창의력을 최대한 존중하는 기업의 합리 경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부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쌓아 온 첨단 기술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말고 세계 일류 기술을 만들어 낸 '창의'와 '자율' 보장에 걸맞은, 모든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산업 기술 유출 방지 대책이 동시에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정진섭 전 경희대 법대교수(변호사) jsjung@soul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