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 중간평가에서 '견제구'를 날렸다. 본지가 ICT 전문가 131인에게 물은 결과 문 정부 4차 산업혁명 정책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이 만족보다 갑절 많았다. 혁신을 가로막는 법제도와 우왕좌왕하는 부처 간 정책혼선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가운데 중국의 무서운 추격도 감지됐다. 선진국과의 큰 격차를 빠른 속도로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부 단일 컨트롤타워를 마련하고 낡은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는 요구가 끓어올랐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기술인재 양성에도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4차 산업혁명 'C학점'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 육성 정책'을 평가하는 질문에 응답자 42%가 '불만족' 또는 '매우불만족'이라고 답했다.
'만족'이나 '매우만족'은 21.4%에 그쳤다. 불만족 평가가 두 배나 많은 셈이다. 다만 '보통'이라는 응답이 36.6%에 달해 향후 개선 여지를 남겼다.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평균 5.8점이 나왔다. 여러 사정을 감안해도 C학점 이상 받기는 어려운 점수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육성을 지속 추진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57.2%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고 답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보통(25.2%)'이나 '그렇지 않다(13.7%)'는 응답이 38.9%나 나온 점은 다소 의외다. 문 정권의 'ICT 홀대론' 정서를 반영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정부가 ICT산업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제외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나온 것 자체가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은 잘못하지만 앞으로 펼치는 정책을 지켜보겠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거센 추격 인상적
4차 산업혁명을 잘 준비하는 국가로는 미국이 37.3%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27.8%로 2위를 차지한 게 단연 돋보인다. 양국이 4차 산업혁명 주도권을 둘러싼 무역·기술 전쟁을 펼치는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22.2%로 3위, 일본이 6.7%로 뒤를 이었다. 한국을 고른 전문가는 한 명에 불과했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이미 한국이 중국에 뒤진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미국을 10점으로 볼 때 우리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은 6.6점에 불과했다.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한국 정부 대응이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이유'에 대해서는 36.1%가 '과도한 규제 및 법적 인프라 유연성 부족'을 꼽았다. 기술 발전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고질적 문제를 꼬집은 것이다.
전통 산업 반발이나 개인정보 규제 등의 이유로 4차 산업혁명이 꽃피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컨트롤타워 부재(18.5%)'가 2위를 차지한 점이 특이하다. 4차 산업혁명을 지휘하는 곳이 너무 많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기관'으로는 '정부(55.7%)'가 압도적 1위로 꼽혔으나 '4차 산업혁명 컨트롤타워'를 묻는 질문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35.1%)' '청와대(29.7%)' '4차산업혁명위원회(25.2%)'가 비슷하게 엇갈렸다.
부처 간 난맥상을 정리할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39.7%가 '필요' 또는 '매우필요'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32.8%가 '불필요' 또는 '매우 불필요'라고 답해 분발이 요구된다.
◇아직도 목마른 '규제완화'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정부가 중점 추진해야 할 점(복수응답)'에는 전문가 34.9%가 '산업 규제 혁신 및 법률 정비'를 첫손에 꼽았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위한 시장여건 조성'도 34.5%로 우선순위에 뽑혔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이 단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신기술·융합산업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절실한 현장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인적자본 투자'가 9.2%를 기록했고 '강력한 컨트롤타워 구축'이 8.8%로 뒤를 이었다. 다시 한 번 리더십 부재 우려가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이 첫손에 꼽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전문인력 부족'을 심각하게 인식했으며, 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차 산업혁명 추진에서 선진국에 뒤지는 중요한 이유로 '전문인력 부족(16.9%)'을 지적했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6.9%), 기업 투자 관련 세제 혜택(5.7%)도 중점 추진 과제로 꼽혔다.
김용주 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