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해년', 평화 추구에 이견 없는 한 해로

최순미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최순미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영화는 분단과 통일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룰 수 있는 플랫폼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메시지 전달력이 강력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 전후 상황을 담은 영화 '굿바이 레닌'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볼프강 베커 감독의 이 영화는 '아름다운 거짓말'(?)이 전반을 관통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인 1989년의 동독을 배경으로 알렉스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아냈다.

알렉스 어머니는 의사인 남편이 서독으로 도망간 이후 동독의 사회주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열혈 당원이 된다. 그러나 시위 현장에서 아들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진다. 그 사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사회는 통일을 맞는다.

어머니는 곧 깨어났지만 충격을 받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당부를 명심한다. 알렉스는 열혈 당원이던 어머니에게 공산주의 몰락과 동독 와해 소식이 치명타로 작용할 것으로 여기고 어머니가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이용, 옛 공산주의 동독 환경을 재현하기로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재미와 메시지를 쏟아낸다. 하루는 어린이 스카우트 대원을 데려와서 사회주의 찬가를 부르게 하고, 더 이상 구할 수 없게 된 동독 식료품을 만들어 낸다. 심지어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가짜로 제작하기에 이른다. 알렉스와 주위 사람들은 일련의 거짓말을 통해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옛 공산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믿게 만든다. 그리고 점점 어머니를 위한 거짓말이 자신이 꿈꾸던 이상사회 동독의 미래였음을 깨닫게 된다.

베커는 사회로 향해 있는 시선과 함께 늘 가족 문제를 영화 핵심에다 놓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독일 사회 문제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이 가족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으며, 그 취약한 영점에서부터 다시 독일 사회 비판으로 이어진다.

'굿바이 레닌'은 통일 독일을 정면으로 맞은 수많은 동독인을 대표해 알렉스 가족을 다룬다. 우리에게도 통일은 분단이 우리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내 어머니의 문제로, 내 자녀의 인생으로 다가올 것이다.

동독 주민의 '오스탈기(Ostalgie)'는 과거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를 뜻한다. 독일어로 '동쪽'을 뜻하는 단어인 '오스트(Ost)'와 '향수'를 뜻하는 '노스탈기(Nostalgie)'의 합성어다.

독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동독과 자본주의 서독으로 분단된 국가였다. 통일 이후 동독인은 하루아침에 자유를 찾아 멀쩡한 집을 버렸고, 서독인은 동독에 있는 분단 이전의 내 땅을 돌려달라고 정부에 떼를 썼다. 하루아침에 서방 문물이 동독 시장을 점령하고, 동독 화폐 가치는 폭락했다.

서독인 눈에 동독인은 게으르고 공짜를 바라는 '오시(Ossi)'였다. 동독인 눈에 서독인은 돈만 밝히고 거만한 '베시(Wessi)'였다. 우리 역시 통일이 된다면, 그래서 남북한 주민이 함께 살아간다면 독일과 같은 마음 통합의 과제는 피하기 어렵다.

2005년에 이 영화를 모티브로 한 한국 영화 '간 큰 가족'이 개봉했다. '굿바이 레닌'이 통일이 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영화라면 '간 큰 가족'은 통일이 됐다고 믿게 만드는 영화다.

'간 큰 가족'은 영화예술로는 성과가 크지 않았지만 관객에게는 마음속에 작은 여운을 꽤 오랫동안 남겼다. 그것은 영화 속 가상의 통일 현실이 어쩌면 우리가 그려 오던 '제법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하는 바람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해년이 밝았다. 1월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두고 벌써부터 우리 사회 내에서 이른바 '남남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쯤 되면 남북 관계만큼 좋은 정쟁의 먹잇감도 없다는 게 안타깝다. 저마다 신년사 해설을 보면서 얼마 전 독일 베를린 출장에서 만난 옛 동독 출신 청년이 한 말이 떠올라 제법 마음이 아프다.

“'평화'는 절대 가치다. 그런데 한국인은 왜 통일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가?”

사회 구성원 각자가 경험한 북한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평화' 추구에는 이견이 없는 2019년이 되길 기원해 본다.

최순미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 choism@aj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