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카드가 NH농협은행의 금융 정보기술(IT)을 채용한다.
금융권에서 경쟁 금융사 IT를 가져다 쓰는 첫 사례다. 경쟁사 간 기술을 주고받는 것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제조업에서 일어난 부품 교차 구매보다 더한 파격이다. 추이가 주목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이 보유한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KB국민카드가 자사 금융 플랫폼에 적용하는 계약을 조만간 체결한다.
서로 다른 금융사 간 디지털 기술 관련 첫 교차 구매다. 앞으로 양사는 API 공급을 계기로 다양한 디지털 분야에 보유 기술을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KB국민은행 등 계열사 API 대신 타 금융사 디지털 기술을 흡수하는 첫 사례다.
이르면 이달 안으로 양사는 API 공급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핀테크 기업 간 API 제공이 아니라 금융사-금융사 간 API 협업 수평 체계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된다.
KB국민카드는 농협 API를 자사 서비스에 탑재한다. 이를 통해 카드 회원 심사 역량을 대폭 고도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농협이 제공하는 API를 활용, 농협 계좌 보유 고객 잔액 등 내역을 카드 발급 심사와 한도 부여 등에 적용한다. 대면 기반 심사 프로세스를 API 기반으로 디지털화하고, 업그레이드 한다. 양사 협업 체계가 완성되면 농협 거래 고객이 잔액 내역 활동에 동의하면 국민카드 발급이나 한도 심사 과정에서 복잡하고 번거로운 소득 증빙 서류 제출 과정이 모두 없어진다.
카드 심사와 발급, 여신 산정 등이 모두 디지털화되는 셈이다.
농협은행이 보유한 API는 141개로, 60여개 스타트업이 이용하고 있다. 금융사에 API가 제공되는 만큼 앞으로 API 기반 금융사 간 교차 구매 가능성도 짙다.
시사점이 크다. 보수 성향의 폐쇄형 자체 서비스를 십수년 동안 유지해 온 금융사가 '디지털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을 허용했다. 이는 금융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금융사 간 디지털 합종연횡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분석했다.
자체 역량으로는 급변하는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리고 타 금융사 기술을 내재화, 시너지 효과를 최소 비용으로 최대화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최근 신한·롯데·비씨카드가 가맹점을 공유, 카드사 공통 QR페이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별 QR 서비스 대신 통합 QR 진영을 형성해 시장 선점을 함께하자는 취지다. 조만간 국민카드, 삼성카드, 현대카드도 통합 QR페이 진영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 IT를 금융사 간 공유해서 더욱 경쟁력 있는 통합 플랫폼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KB국민카드에 농협 API 기술을 제공하는 계약이 조만간 체결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제 금융 시장도 IT를 서로 공유해서 사고파는 신디지털 금융 시대가 개막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보수 성향의 폐쇄형 금융 플랫폼을 고집해 온 금융사 간 철옹성이 '디지털 기술'로 혁신되는 사례가 나오면 금융사 간 협업 수평 체계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