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실패에 관대한 창업 문화 구축할 때

[ET단상]실패에 관대한 창업 문화 구축할 때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정미소로 처음 창업에 도전했다. 정미소 사업이 승승장구하자 운송회사를 인수했고, 이 역시 수익이 나자 토지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중일전쟁 발발로 토지 시세가 폭락하면서 토지와 정미소, 운수회사를 매각해야만 했다. 이 실패는 큰 교훈이 됐다. 훗날 이 전 회장이 삼성그룹 창업 토대를 마련하는 원동력이 됐다.

창업 초기 기업은 모두 언제나 실패에 노출돼 있다. 젊은 창업가일수록 위험과 리스크에 취약하다. 그렇다고 실패한 기업가에 재기의 기회를 박탈했다면 우리가 아는 기업 가운데 다수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기업이 됐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리바바의 마윈, 애플의 스티브 잡스 성공을 조명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처절한 실패가 있었음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실패와 성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올해는 창업계에 뜻 깊은 해다. 창업지원금 1조원 시대가 열렸다. 올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창업 지원 사업 규모가 1조1180억원에 이르면서다. 지원 유형별로 창업 사업화(45.9%), 연구개발(R&D, 33.9%), 시설·공간(13.4%)으로 지원 범위도 고루 배분했다.

창업 관계자로선 반가운 일이다. 전년도 예산보다 43% 늘어난 파격 규모다.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창업 정책의 맥을 짚었다. 이를 높이 평가한다.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창업 정책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비춰질 수 있다. 당장 효과가 나는 지원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업은 성공률이 낮다. 쓰이는 돈은 크지만 당장 가시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다. 담당 부처로서는 자칫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다.

이를 놓고 외부에서는 압력을 가하거나 흔들어선 안 된다. 결과물을 즉각 요구하는 순간 창업 지원 사업의 의미는 퇴색하고, 효과는 떨어진다. 정부 정책은 왕왕 당장 보여 줄 수 있는 숫자와 결과를 요구한다. 그러나 창업 정책은 단기 성과에 매달려선 안 된다. 실패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 정책 지원을 받고도 실패할 수 있지만 창업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마땅히 감내해야 할 비용이다.

정책 및 물리 환경은 무르익었다. 이제 필요한 건 인식 전환이다. 실패를 대하는 편견을 바꿔야 한다. 창업자를 막는 건 돈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정부의 창업 정책은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발전했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까지 없애지는 못했다. 현장에서는 창업을 망설이는 유능한 예비 창업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창업 실패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일련의 불상사는 없애야 한다.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심어 줘야 한다. 창업 실패자는 인생 실패자가 아니라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경험한 인재다. 이런 의미에서 2018년부터 기술신용보증 같은 공공 보증 기관의 중소기업 대표 연대보증 제도를 폐지한 것은 좋은 사례다.

사회에서는 실패를 자산이 아닌 손실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성공은 실패가 모여야 비로소 이뤄진다.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축적'은 이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축적된 실패 자산을 토대로 스케일 업을 추구하고, 성공으로 나아간다. 실패는 자산이지 오점이 아니다. '린스타트업'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준비가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시작하고, 시장과 고객 검증을 통해 어렵다면 빠르게 피버팅 하라는 게 린스타트업의 핵심이다.

창업은 성공을 보장하는 도전이나 낭만이 아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를 떠나 도전할 값어치가 충분하다. 국내에서도 혁신 창업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스케일 업을 거쳐 대기업 지위까지 올라간 사례는 찾기가 쉽지 않다. 창업계 숙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2의 삼성, 제2의 LG를 육성할 때다. 그 밑거름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풍족한 창업 환경이 우선 갖춰져야만 양질의 인력과 투자금이 유입된다. 우수 스타트업도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난다.

한국에 창업의 큰 판이 열리길 기대한다.

안창주 수원대 창업지원단 교수, 엔슬협동조합 공동설립자 root1@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