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차세대 전산시스템 소프트웨어(SW) 사업자 선정 전 기술검증(PoC)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시중은행보다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도 차세대 사업자 선정에 앞서 PoC를 한다.
14일 SW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차세대시스템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과 미들웨어 사업자 선정 전 PoC 절차를 생략했다. PoC(Proof of Conecept)는 시스템 도입 전 기술적으로 실현가능한지 검증하는 절차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앞서 제안된 SW 성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비교해 최상의 SW를 선정하는 과정이다.
KB국민은행은 티맥스데이터 티베로와 티맥스소프트 제우스는 물론 다른 제안사인 오라클 제품인 오라클 DB와 웹로직 모두 PoC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IBM DB2와 웹스피어만 최종 입찰에 참가했다. 한국오라클 관계자는 “국민은행 차세대 SW 사업자 선정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IBM 단독입찰로 사업자를 선정,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국민은행 행보는 다른 은행 절차와 다르다. 앞서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한 전북은행과 광주은행 등 지방은행은 물론 최근 교보생명과 우리은행까지 대다수 은행 SW 사업자 선정 전에 PoC를 거쳤다. 기술을 검증하고 제안된 가격과 종합해 사업자를 선정했다.
KB국민은행은 한국IBM 단독입찰 상황에서 재공고 없이 사업자를 선정했다. 차세대 주사업자가 제안한 오라클과 티맥스에 공지된 재공고 사실은 없었다. 공공사업은 단독입찰 시 복수 사업자 참가 유도를 위해 재공고한 뒤 대안이 없으면 수의계약을 체결한다. 사용자 규모나 금전 거래라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고려하면 은행 역시 공정한 경쟁입찰이 필요하다고 지적된다.
KB국민은행은 티맥스와 오라클 제품에 대해 과거 기술을 검토해 비용과 시간이 발생하는 PoC가 불필요했다고 해명했다. 티맥스 계약금지체결 가처분신청 관련 KB국민은행 법률대리인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채권자(티맥스)에 대해 추가 기술검토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미 내부에서 티맥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 기술 검토를 통과한 데다 새로운 제품을 제안 받을 때마다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는 기술검토를 일일이 수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티맥스가 주장하는 IBM 대상 기술검토는 DB에 추가된 기능에 한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맥스 제품과 같은 이유로 오라클 제품 역시 PoC 필요성이 없었다고 밝혔다.
SW업계 관계자는 “PoC는 통상 새로운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도입할 때 대부분 선행한다”라면서 “PoC나 벤치마크테스트(BMT)를 하는 것은 금융사 시스템과 호환성을 확인하고 업체별 제품을 비교해 성능을 테스트해 최상의 솔루션을 구입하기 위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일부 소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PoC나 BMT를 생략할 수 있지만 전환하면 최소 5~10년 이상 유지하는 차세대 프로젝트에서 기술 요소를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시스템 버전만 바뀌어도 다른 시스템으로 간주되고, 차세대는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교체한다는 점에서 기술이 중요한 요소다.
KB국민은행 제안요청서에도 DBMS·웹서버·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 등 업무 시스템은 복수 벤더 제품을 제안하고, 내부검토와 가격경쟁 등을 거쳐 선발한다고 명시돼 있다. 내부검토는 통상 PoC와 BMT를 의미한다는 게 SW업계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KB국민은행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사업자 선정에 앞서 IBM과 동행 출장한 데 이어 PoC를 하지 않은 또다시 납득하지 못할 일이 밝혀졌다”면서 “공공사업만큼 투명성과 기술성이 요구되는 금융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납득할 만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진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