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를 맞아 이런 저런 모임을 나가다 보면 드라마 'SKY캐슬'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필자와 같은 중년 남자에게 아이를 기르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거나 들어 봤음직한 이야기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드라마 원제는 '프린세스 메이커'였다. 공주를 만든다는 뜻의 프린세스 메이커도 드라마 내용에는 얼추 들어맞지만 현재 제목보다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0.1%만을 위한 폐쇄된 공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악다구니와 입시지옥, 대중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욕망과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한 'SKY캐슬'이라는 이름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 같다. 원제 그대로 드라마가 방영됐다면 시청자에게 지금과 같이 뜨거운 반응은 불러일으키기 어렵지 않았을까.
이처럼 브랜드는 큰 힘을 발휘한다. 제품을 접했을 때 자세한 설명보다 곧바로 뇌리에 꽂히는 브랜드 하나가 소비자 마음을 더 쉽게 사로잡는다. 광고계 대부 데이비드 오길비는 제품 속성, 포장, 가격, 역사, 광고 방식을 포괄하는 무형의 집합체가 바로 브랜드라고 정의했다.
필자가 지난 30여년 동안 현장 중소기업과 호흡하면서 느낀 것은 중소기업이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도 낮은 브랜드 인지도 때문에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중소기업 브랜드라 하면 으레 품질이 낮을 것이란 선입관에 사로잡힌다. 대기업 제품보다 더 많은 기능과 더 우수한 성능에도 제값을 인정받지 못했다. 얼마 전 만난 가구 업계 대표는 인터넷에 같은 제품을 올려도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브랜드보다 부도난 대기업 브랜드로 올릴 때가 더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항상 곱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이 일었을 때는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 사뭇 달랐다. 당시 대다수 벤처기업은 기존 중소기업에 벤처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만 너도 나도 숨은 진주를 찾는다며 벤처기업 투자 열기가 고조됐다.
스타트업 붐이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업력도 경험도 부족한 신생 스타트업이 혁신과 신성장 동력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소기업 이상 평가를 받기도 한다. 벤처든 스타트업이든 결국 본질은 제품을 생산하는 주체보다 해당 제품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띠는 브랜드가 더 중요하다.
중소기업 납품 비중은 77.5%에 이르지만 소매 판매 비중은 8.8%에 불과하다. 납품 위주 경영은 불공정 거래, 대기업 성과 독식 등 문제를 야기한다. 최근에는 중국과 기술 격차가 급격히 축소되면서 이마저도 중국산으로 대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제 중소기업도 대기업에 의존하는 납품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통해 시장에서 직접 승부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중소기업에 대한 곱지 않은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중소기업 대표 국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브랜드K'다.
2년여 준비 끝에 올해 론칭하는 브랜드K는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미국의 선키스트나 스위스의 스위스라벨 같은 공동 브랜드 모델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함께 판로를 개척하는 게 목표다.
언제 어디서든 '대한민국 대표 중소기업 이미지, 브랜드K'를 보게 된다면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 대신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 줬으면 한다.
서승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newssw1@kbiz.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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