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SKB-페이스북 '윈윈'···역차별 해소 정책 '탄력'

700일이 넘는 지리한 협상 끝에 마침내 SK브로드밴드와 페이스북간 망 이용대가 협상이 타결됐다. 금액보다 망 이용대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둔 SK브로드밴드, 글로벌 차원에서 비용 부담이 작지 않지만 '상생' 이미지 획득을 노린 페이스북이 실리를 챙긴 협상으로 분석된다. 향후 국내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년 만에 협상 타결

SK브로드밴드와 페이스북 협상이 타결된 건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만이다.

접속경로 변경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016년 12월 통신사는 주로 KT에서 페이스북 트래픽을 공급받았다.

페이스북이 KT에만 망 이용대가를 냈기 때문에 KT 이외에는 홍콩에서 한국으로 오는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다시 말해 KT가 홍콩으로부터 페이스북 트래픽을 끌어와 각 통신사에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호접속고시 개정으로 트래픽 유발자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자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등 통신사 접속경로를 KT를 거치지 않는 해외 망으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통신사업자와 협의가 없었다.

전송품질을 보장하지 않는 일반 국제회선으로 접속경로를 변경하자 병목현상이 발생, SK브로드밴드 페이스북 서비스가 4배 이상 느려졌다.

이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 인터넷 데이터 센터(IDC)에 캐시서버를 설치하고 망 이용대가를 내야 했다.

양 사는 망 이용대가 금액을 놓고 지리한 협상 끝에 한 발씩 양보, 마침내 합의점을 찾았다.

◇SK브로드밴드-페이스북 '윈윈'

양 사는 실리를 챙겼다.

SK브로드밴드는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협상에 의해 얻어냈다는 '경험' 자체가 소중한 자산이다.

글로벌 사업자와 망 이용대가 협상은 순수히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영역이어서 협상력이 부족한 국내 통신사는 협상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사업자 트래픽이 급증하는데도 망을 무료로 이용하는 '망 무임승차'가 이슈로 부상한 결정적 이유다.

SK브로드밴드가 페이스북을 상대로 이룬 성과는 '이정표'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다른 글로벌 사업자와 협상을 이끌어내는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페이스북도 실리를 챙겼다. 망 이용대가 규모를 낮춤으로써 트래픽이 급증하더라도 대가도 급증할 위험을 어느 정도 차단했다.

중요한 건 '글로벌'이다. 페이스북은 한국에서 망 이용대가를 내기로 한 만큼 다른 나라에서도 망 이용대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SK브로드밴드와 협상 타결이 단순히 한 사업자와 계약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용 부담도 클 전망이다.

현지 사업자나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글로벌 사업을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비용을 부담하고라도 '상생'을 택한 페이스북 결정은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차별 해소 탄력

인터넷 역차별 해소 정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 사태 이후 방송통신위원회는 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하고 장장 10개월 간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며 역차별 해소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도 가세해 힘을 보탰다.

역차별 해소의 가장 큰 난관이라고 여겨졌던 망 이용대가 문제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힘의 논리가 통하는 망 이용대가 협상 테이블에서 아무런 규제집행력이 없는 한국 정부 의지가 관철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 반발만 불러 무역마찰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그럼에도 SK브로드밴드와 방통위 등이 인내심을 갖고 페이스북을 설득해 협상 타결이라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이효성 방통위원장 주도로 역차별 해소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SK브로드밴드도 안팎의 회의적 시각을 물리치고 2년 여 간 외로운 싸움을 벌인 결과다.

힘의 논리가 우세한 인터넷 세계에서도 노력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역차별 해소 행보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