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지역경기 훈풍 기대되지만…“결국 SOC 투자, 부실사업 양산” 우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가 총 24조1000억원 규모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면제 사업을 확정·발표했다. 17개 시·도의 신청(68조7000억원)에 비하면 거의 3분의 1로 축소됐지만 역대 정부와 비교해 절대 규모면에서 상당한 수준이다.

예타의 벽을 넘지 못해 중단·지연됐던 지역 사업이 대거 추진될 전망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할 전망이다. 그러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기존 정책기조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4대강 사업'처럼 대규모 예타 면제가 부실사업·예산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24조 지역투자 풀린다…경기부양 보다 국가균형발전?

예타는 '대규모 사업은 경제성이 입증돼야 재정을 투입한다'는 기조를 반영한 제도다. 그러나 지역에선 중요 사업마저 번번이 예타의 벽에 가로막혀 투자가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고 인프라가 취약한 비수도권은 예타 통과가 어려워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추진이 늦어지고 사람이 모여들지 않은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예타를 면제할 총 24조1000억원 규모 23개 사업을 확정했다.

앞서 17개 시·도는 약 2개씩 총 32개 사업, 68조7000억원 규모 예타 면제를 신청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수도권 사업을 원칙 배제하고 국가균형발전·지역경제활성화 등을 고려해 23개 사업을 선정했다.

이번 예타가 면제된 사업은 이르면 내년부터 재정이 투입된다. 예타 면제 총 사업비 24조1000억원 가운데 18조5000억원은 국가재정으로, 나머지는 지방·민간이 충당한다.

예타 면제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 지역경제 활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정치권 등에선 내년 총선을 고려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2019년 정부 예산의 20분의 1 수준을 뛰어넘는 무책임한 '인기영합 정책'과 '선심성 퍼주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경제활성화보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홍 부총리는 “예타 면제 사업 추진으로 경제활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목적은 경기부양이 아닌 국가균형발전 도모”라며 “24조원은 2020년부터 10년에 걸쳐 투자되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 큰 착공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文 정부도 결국 'SOC 투자'…“4대강 꼴 날라” 우려도

정부는 23개 사업을 △R&D 투자 등 지역전략산업 육성(5개) △지역산업 인프라 확충(7개)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5개) △지역주민 삶의 질 제고(6개)로 구분해 발표했다. 그러나 지역전략산업 5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SOC 사업이라는 평가다.

남부내륙철도를 건설해 수도권과 거제를 2시간대로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 사업(4조7000억원)이 눈에 띈다. 강원도와 호남 연결을 강화해 경부축과 함께 X축 국가철도망을 이룰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5000억원)도 핵심으로 꼽힌다. 대전광역시 숙원사업인 도시철도 2호선(트램) 건설(7000억원)도 예타 면제 대상에 선정돼 눈길을 끌었다.

이번 예타 면제로 침체된 지역 건설투자에 훈풍이 불 전망이다. 그러나 SOC 투자를 '토건사업'이라며 비판적으로 접근해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어긋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이런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올해 '생활 SOC'에 예산을 대거 배정하는 등 SOC 투자를 늘려가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도 이런 점을 지적하며 “대규모 SOC 정부 실패는 수요가 실종된 '과잉복지'를 낳고 미래 세대에 '재정폭탄'을 안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예타 면제로 부실사업이 양산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대로 된 경제성 평가 없이 추진되는 사업 중 일부는 향후 '애물단지'로 전락해 세금만 낭비하는 사례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명박 정부 때 예타를 면제한 '4대강 사업'이 대표 사례다.

이에 대해 홍 부총리는 “오늘 발표한 23개 사업 중 이미 예타가 이뤄진 사업은 7개”라며 “앞으로 사업 규모 적정성 검토가 있어야 하고, 더 촘촘한 사업계획도 필요하다. 문제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구체 사업계획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