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메이커가 되겠다.”
김영삼 전자부품연구원(KETI) 원장의 포부다. 그는 지난해 11월 KETI 제8대 원장에 취임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33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신임 원장은 산업자원부 신재생에너지과장, 철강화학과장, 지식경제부 유전개발과장 등을 거쳐 2014년부터는 산업통상자원부 투자정책관, 산업기술정책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무역투자실장 등 주요보직을 역임했다.
정책 전문가인 그는 산업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KETI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KETI는 1991년 설립된 '전문생산기술연구기관'이다. 전자와 IT산업 분야 선도 기술을 개발하고 국내 중소·중견기업 기술혁신과 사업화를 견인, 궁극적으로는 국내 전자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설립 목적이 있는 곳이다.
KETI는 다소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 공공성을 띠면서도 정부 예산을 지원받지 않는다. 공개경쟁(PBS)을 통한 과제 수주로 기관이 운영된다.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하는 구조로, 그만큼 경쟁력이 필수다. 민간기업과 같아 보이지만 공익적인 목적은 또 갖춰야 한다.
취임 2개월이 지난 김영삼 KETI 원장을 만났다. 기술 진화와 융합이 빠르게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존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KETI 역할과 발전 방향을 듣기 위해서다.
-곧 취임 100일을 맞이하시는데요. 소회가 어떻습니까.
▲공직에 있는 동안 산업과 기술개발 현장에 가깝게 다가서려 노력했으나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직접 현장에 서고 보니 기대와 긴장감, 기관장으로서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낍니다.
작년 11월 취임 직후 KETI 가족들의 근무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열정적인 연구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8년간 쉼 없이 성장하면서 누적된 조직의 피로도를 공감할 수 있었고 자력으로 성공한 전문연구기관으로서 출연연 공공성과 기업연구원의 역동성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KETI만의 미래발전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KETI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부족하다고 느껴진 부분이 있었는지요.
▲KETI의 강점은 기업과 동반성장을 지향하는 기업친화형 연구기관이라는데 있습니다. R&D 기획과정에서부터 산업현장 실수요를 반영, 양산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강점은 자생력에 있다고 봅니다. KETI는 정부출연금 없이 자체 기술경쟁력만으로 R&D 사업을 수주, 출연연과 대등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아울러 다양한 분야 R&D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재, 통신, 디스플레이, 반도체, 센서, 메디컬, 로봇 등 기술 스펙트럼이 다변화됐습니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부족한 점이라면 경영적 관점에서 연구원이 앞으로 어떻게 '선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립 초기에는 '생존'을 걱정했고 이후에는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성장을 이룬 지금부터는 어떻게 선제적으로 나아갈 지가 중요합니다.
-KETI는 신기술 개발 및 이전을 통해 국내 중소·중견기업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핵심 역할로 압니다. 지난해를 포함해 그간의 성과는 어땠습니까.
▲우리 연구원은 2018년 기준 연 1700억원대 과제를 수주했습니다. 5년 연속 흑자경영도 달성했고요. 1700억원 중 기술이전과 민간수탁과제 규모가 약 80억원입니다. 특히 수탁과제 규모가 20% 증가하면서 기업맞춤형 기술개발에 탄력을 받는 추세에 있습니다.
기술 성과로 보면 차세대 전력반도체 실장기술, 무전원 IoT 통신 시스템 기술, 인체삽입형 자가충전·무선통신시스템기술 등 3개 과제가 과기부 선정 2018년 100대 우수과제에 선정됐습니다. 이 외 불이 안 나는 이차전지와 급속충전기술이 KISTEP 선정 10대 유망기술로 뽑혔고, 수행 중인 과기부 지능정보 플래그십 총괄과제를 통해 국내 최초 AI 기반 수어인식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요. 새롭게 맡으신 첫 해인만큼 올해 사업계획과 운영방침, 방향이 궁금합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이노베이션 메이커(Innovation Maker)'와 중소·중견기업과 동반성장하는 '기업협력 플랫폼 구축'을 올해 목표로 세웠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 융·복합화로 변화를 예측하기 힘듭니다. 그만큼 기술개발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전략기술 기획력과 정책수립 역량강화를 추진할 방침입니다.
또 기업협력 플랫폼을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기술매칭 방식을 다양화하고 기업 현장 중심으로 소통을 내실화할 생각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신바람 나는 '드림팩토리'로 KETI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연구원 개개인의 뛰어난 연구역량이 잘 발휘되고 조직으로서 합쳐져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율하고 포장하는 게 제 역할일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빠른 성장을 이어오던 국내 전자산업이 최근 정체되는 모습입니다. 반도체도 호황을 누리다가 둔화가 일고 있습니다. 전자부품 업종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압박을 받는다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국내 부품 산업의 발전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반도체가 위기라고 보는 것은 조금 섣부른 감이 있으나 우리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또 그간 주력 제품이던 스마트폰과 가전 등이 정체돼 우려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중국 경우 제조혁신 2025 등을 통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 전자 분야에 국가적 차원 투자를 강화해 완제품뿐만 아니라 핵심 부품 분야에서도 약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설비투자 확대와 같은 방식으로는 중국에 경쟁우위를 갖기 어렵습니다. 경쟁우위는 끊임없는 기술혁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술혁신은 다양한 산업분야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데, 글로벌 대기업을 제외한 개별 전자부품 기업의 힘으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기관들의 참여와 정책지원을 통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요구됩니다. 우리 연구원은 해외 수요자가 우리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전자부품 산업의 도약을 위한 혁신 생태계 내 '이노베이션 메이커'로서 중소·중견기업 성장을 돕는 플랫폼 역할을 더욱 강화하고자 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전자부품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정부출연연구소, 민간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전자부품연구원이 다른 연구원과 차별화되는, 차별화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우리 연구원은 기업 성장과 산업 발전 동반자라는 인식이 체화돼 있다는 점이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지난 두 정부에서 출연연의 중소기업 지원 기능 강화를 추구한 것은 사실이나 원래 출연연 핵심 역할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입니다.
KETI는 기술개발 그 자체도 중요시 하지만 기업들이 기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우리 기술을 사업화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IoT 플랫폼인 '모비우스'입니다. IoT를 구현할 수 있게 돕는 모비우스는 소스 파일이 공개돼 국내외 약 880여개 기업과 기관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제조분야에서도 안산 스마트제조혁신센터를 중심으로 43개 기업 및 기관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원이 개발한 산업용 IoT 기술을 지원하고 기업이 만든 제품·솔루션 성능과 표준 호환성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운영 중입니다.
-원장님은 그동안 정책을 계획하고 입안하는데 경험이 많습니다. 이제는 현장에서 실행하는 업무를 맡으셨습니다. KETI에서 이루고 싶은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연구원은 신기술개발 및 우리기업의 글로벌 시장선점을 위한 선제적 역할에 매진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영환경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협력 플랫폼 2.0'을 제대로 정착시켜 민간과의 기술협력을 지속적으로 확산하고 기업 동반성장 생태계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중소·중견기업들이 글로벌기업과 기술협력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KETI의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확산하겠습니다. KETI의 보유기술과 해외 네트워크를 토대로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쉽게 개척하고 수출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글로벌 기술협력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아울러 연구원의 안정적 정주여건을 마련하는데 힘쓸 계획입니다. 현재 본원 건물을 성남시에서 임대해 쓰고 있고 상암과 부천, 판교 등에 본부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2021년이 되면 KETI가 설립 30주년이 됩니다. 확실한 제2 도약을 위해 안정적 정주여건 플랜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현재 5년 연속 이어지고 있는 흑자경영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과제수주 규모도 2000억원대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고 기술이전 및 민간수탁 규모도 100억원을 넘기고 싶습니다.
<김영삼 원장은>
행정고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99년 우수공무원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2015년에는 국민이 체감하는 우수정책을 추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근정포장을 수상했다.
주중대사관 근무 당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애로사항 해소에 역할이 뛰어나 중국통으로 불렸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격이지만 책임감과 추진력이 강해 선후배 평판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ETI에서도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주기적으로 직원들과 만남의 자리를 통해 열린 경영에 힘쓰고 있다.
공정하고 배려심이 깊어 직원들로부터 덕망이 높으며 모든 성과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에 연구원과 개인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워라밸을 강조한다.
대담=장지영 미래산업부 부장
정리=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