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떴다'. 해외 영상물에서나 보던 괴생물체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우리 정서와 맞지 않아 드라마 소재로 쉽지 않다는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킹덤' 이야기다. 지난달 25일 190여 나라에서 동시 개봉해 큰 성과를 올렸다.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만 지난해 1월 34만명에서 올해 1월 140만명으로 늘었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LG유플러스도 반사이익을 봤다. 킹덤 공개 직후 신규 가입자가 닷새 동안 세 배 늘었다. 해저 케이블망까지 증설을 검토한다니 '킹덤 효과'가 따로 없다.
정치시사 팟캐스트도 '공중부양'했다. 볼품없는 스튜디오에서 '색깔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일약 유튜브 스타로 등극했다. 대표 주인공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시작한 '알릴레오'다. 지난달 2일 첫 방송, 15시간 만에 25만명을 돌파했다. 9일 현재 구독자가 68만명을 찍었다. 조회 수는 1억회를 앞뒀다. 유튜브는 30만 가입자면 대박이라고 한다. 반짝 성적표치고는 대성공이다. 단 두 달 만에 유력 정치 채널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
직업병 탓일까. 킹덤과 알릴레오보다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간판에 눈이 먼저 간다. '도긴개긴'이라고 말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한쪽은 콘텐츠, 다른 한쪽은 이를 실어 나르는 플랫폼, 즉 채널이다. 킹덤과 알릴레오 성공에는 단연 좋은 스토리, 뛰어난 제작 능력, 지명도 있는 주연배우 등이 한몫했다. 그러나 결국 플랫폼 힘이다. 킹덤 자본력도 무섭고 유시민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운동장이 있기에 가능했다. 과거에도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콘텐츠는 많았지만 빛을 본 사례는 흔치 않다. 마땅한 채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만든 새로운 세상이다.
불과 수년 전 이들은 변방이었다. 시쳇말로 '아웃사이더'였다. 전통 미디어 입장에서 보면 제작이나 운영 능력이 소꿉장난 수준이었을 것이다. 좋게 평가해야 잠재력이 있는 갓난아이일 뿐이었다. 상전벽해다. 1997년 DVD대여업으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7년부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콘텐츠 킬러'로 거듭났다. 2005년에 출범한 유튜브는 '갓튜브'로 불릴 정도로 검색과 동영상 시장을 휩쓸었다. 세계 인구 4명 가운데 1명인 18억명이 매일 시청할 정도로 미디어 세상을 평정했다. '인사이더'로 떠오른 것이다.
미디어는 달리는 호랑이에 올라탄 형국이다. 변화 속도에 숨이 찰 지경이다. 모두 인터넷과 정보기술(IT) 때문이다. 콘텐츠 소비 형태도 '180도'로 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 변방에서 주류로, '아싸'에서 '인싸'로 바뀌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전통 미디어는 딴 세상이다. 과거 일기장만 뒤적이며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 지상파TV는 수년 전부터 위기라고 떠들지만 여전히 '마이웨이'다. 플랫폼으로서 힘은 쑥 빠지고 콘텐츠 업체로서 입지도 좁아졌지만 방향조차 잡지 못한다. 상대하기 쉬운 정치권만 기웃거린다. 우왕좌왕하기는 케이블TV도 마찬가지다. 지역 독점을 무기로 매출 절반 이상을 수익으로 가져가던 시절에 시계가 딱 멈춰 있다.
14일 LG가 CJ헬로 인수를 공식화했다. 시간문제였지 언젠가 닥칠 현실이었다. 미래는 준비할 때와 떠밀려 맞이할 때가 천양지차일 것이다. 흐름을 읽지 못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잘 나갔던 시절 향수에 젖어 현실을 무시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와목무실(臥木無實)'이라고 했다. 누워있는 나무에 열매가 맺을 리 없다. 어차피 맞이할 미래라면 빨리 변하는 게 상수다. 미디어 빅뱅은 이미 발등의 불이다. 지금도 한참 늦었다.
전자산업/정책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