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마다 규모가 다르지만 많게는 한 달에 수백만 건이 접수되고 모든 통화 내용은 녹취 데이터로 저장된다. 저장된 녹취 파일은 대용량 데이터로 누적되면서 사람이 직접 듣고 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됐다. 이때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시키는 기술인 STT(Speech to text) 솔루션으로 텍스트 데이터를 생성한 후 빅데이터 기술이나 텍스트 분석(Text Analytics) 기술을 이용해 유효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업계를 지배했다.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수년간의 콜데이터를 전수로 분석해서 마케팅에 활용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접근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콜의 구성비 관점에서는 기존 상담코드 기반 분석과의 차별화가 어렵고,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 관점에서는 구조화가 어려운 개별 사례며, 목소리 강도나 감정 같은 것은 텍스트로 변환되면서 손실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확인된 분석 분야는 '성공'으로 분류된 콜과 '실패'로 분류된 콜에서 빈도가 높은 어휘를 비교·탐색하는 방법이다. 특정 어휘를 많이 사용한 상담사의 판매 성공률이 그런 어휘가 사용되지 않은 상담사보다 높다면 상담사에게 그러한 차이를 공유시켜서 평균값을 올려 보고자 하는 시도다.
콜센터의 콜이 월 수백만 건이고 대용량이기 때문에 STT, 텍스트 분석, 빅데이터 등 기술이 아니면 분석이 어렵다는 것도 잘못된 인식이다. 어제 콜과 오늘 콜이 다르지 않고, 한 시간 전 콜과 현재 콜이 다르지 않다. 다만 상황과 시기에 따라 구성비와 유입량이 다를 뿐이다.
2000콜 정도의 콜 샘플을 전문가가 분석하면 100개 안팎의 표준질의(SSR: Structured Standard Request)를 추출할 수 있다. 놀랍게도 그렇게 추출된 100개 안팎의 SSR가 콜센터에 유입되는 고객 요구의 90% 이상을 커버한다. 그 가운데 약 20개의 대표 SSR가 콜 비중 70% 이상이다.
또 SSR에 고객 언어로 표현된 실제질의사례(RIR: Real Instance Request)를 매핑한 후 로딩시키는 방법으로 챗봇 요구 사항 이해 지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다. SSR는 관련된 디지털 화면 리스트와 다시 매핑시켜 고객 언어로 표현된 실제 질의가 자연스럽게 디지털 처리 화면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매개 인터섹션 테이블이 완성된다.
필터봇은 챗봇 학습에도 아주 중요한 개념을 제공한다. 필터봇이 아닌 일반 챗봇은 특정 수준 이상 지능과 처리 능력이 확보돼야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필터봇은 이해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20% 수준이어도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다. 20% 필터링 이후 나머지가 인간 상담사에게 매끄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때 필터봇이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넘겨진 사례를 분석해서 필터봇에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치면 빠르게 지능 향상을 이룰 수 있다.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 동선을 사업자가 설계한 것이 아니라 잔디밭에 고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길을 사후에 최적화한 사례처럼 챗봇과 인간의 대화 및 처리 방식은 서비스 오픈 이후 완성돼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필터봇으로 설계해야만 가능하다.
100m 방수 시계가 주어졌다고 해서 100m 잠수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분석할 능력이 없는 기업에 STT, 텍스트 분석, 빅데이터 솔루션은 고비용으로 도입한 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기 쉽다. 콜데이터 분석도 챗봇 학습도 SSR 추출과 필터봇 개념의 서비스 설계가 핵심이다.
강태덕 동양네트웍스 대표 ted.kang@tongy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