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38>혁신 거버넌스 재설계 이젠 검토해야 한다

[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38>혁신 거버넌스 재설계 이젠 검토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 실생활까지 성큼 다가섰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클라우드는 물론 가상화폐 기술로 알고 있는 블록체인까지 속속 수조원 가치의 기업과 산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록 제조업의 디지털화 현상을 3차 산업혁명으로 포장했고, 인더스트리 4.0이란 개념도 저변을 다져 놓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3년 전에 처음 주창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확산 속도는 가히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초창기 기술 혁신이나 기껏 산업 혁신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 이것은 지금 그 궁극의 대상을 우리 사회 시스템 전체로 하고 있음도 분명해지고 있다. 그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기술 혁신이나 산업혁명 과정과 공진화(共進化)돼 누적된 결과물로서 정치, 경제, 문화, 행정과 정책을 포괄하는 사회 시스템 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지 2년 만인 2018년 1년 '애자일 거버넌스'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주제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정책 방식 재설계'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4차 산업혁명을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와 정책 운영 패러다임이었다.

보고서는 제안을 몇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이 만드는 기술 변화에 정책이 공진화하기 위해서는 더욱 민첩하게 정책을 개념화하고 조직해야 한다. 둘째 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거버넌스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 궁극으로는 지금의 정책 결정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 역시 고려돼야 한다.

이와 함께 몇 가지 꽤 구체화된 제안을 나름대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른바 '정책 실험실' 같은 것이다. 이것은 비록 제한되고 통제된 환경과 여건 속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정책 및 접근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다른 제안 가운데에는 규제 샌드박스도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8년 한국경제 보고서'에서도 강조된 이것은 기업이 규제나 라이선스 같은 장애물을 극복하지 않고도 혁신 제품·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기존 규제 아래에서 불가능한 혁신이 장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더욱 투명한 행정을 실현하는 것처럼 신기술을 행정에 적극 적용할 것도 제안한다.

정부가 다른 주체와 협력하고 교류하는 과정도 바뀌어야 한다. 정책 결정 과정에 더욱 폭넓은 시민과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포용 과정을 통해 공공 신뢰를 높이는 것은 그 한 예다. 또 다른 예로는 이른바 '혁신 협상'같이 기업이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이려 하지만 규제라는 장애를 경험할 경우 규제 당국에 협상을 요구하는 방식도 있다. 민간기업과 공공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연결해서 수집한 정보를 더욱 정확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에 적용하는 것이지만 '크라우드 소싱 기반 입법' 또는 일반 대중을 신기술의 사회 영향에 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시도도 제안한다.

보고서는 정부만이 더 이상 4차 산업혁명에서 동떨어진 채로 자기만의 발전 경로를 따라가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는 관점을 지향한다. 만일 오늘날의 거버넌스와 정책이 새로운 기술 혁신 패러다임을 수용할 수 없다면 혁신 거버넌스 재설계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기술과 사회 진화에 정책을 묶어서 상호 공진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4차 산업혁명을 따라잡기도 수용하기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