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국무회의에서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 것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반도체 산업이 D램·낸드플래시와 같은 메모리에 편중돼 시황 변화에 따른 부침이 심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몇 년간 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기록적 실적을 남겼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 들어 미·중 무역 분쟁과 메모리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수요가 둔화되자 실적이 급격히 꺾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8조3293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보다 46.8% 급감할 것으로 추정됐다.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2조86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2%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부진은 우리나라 수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11.1% 감소했다. 지난해 12월(-1.2%), 지난 1월(-5.8%)에 이어 석 달째 감소세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16년 12.56%에서 지난해 20.94%로 상승했다. 반도체에 대한 쏠림이 심화하면서 반도체가 둔화하면 전체 수출도 감소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우리나라의 수출 편중성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10% 감소할 경우, 최대 20조원 이상 생산유발액 감소와 5만명 이상 직·간접적인 고용손실이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시장 변화에 따른 부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메모리와 함께 시스템반도체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시스템반도체는 PC 중앙처리장치(CPU)부터 시작해 최근 모바일 시대에선 스마트폰 두뇌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 등을 망라한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와 달리 수요가 꾸준해 변동 폭이 크지 않다. 특히 각종 산업의 핵심 기반 기술이자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우리나라 주력산업 고도화와 미래 신산업 창출과도 직결된다. 대통령까지 나서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주문한 배경이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14.7%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 영향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도 3%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메모리를 제외한 다른 반도체들은 '낮지만 한자릿수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스템반도체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인텔이다.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이 작년보다 7% 감소한 4689억달러(약 53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인텔은 작년보다 1%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메모리 시장 악화로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인텔이 세계 반도체 매출 1위를 재탈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시스템반도체 산업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시스템반도체를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시스템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파운드리도 보유하고 있고 정부의 대규모 시스템 산업 지원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았다. 매출액 기준 국내 팹리스 상위 10개 업체 중 5곳이 지난해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위기감이 커졌다. 무엇보다 메모리 중심의 수직적이고 집중형인 산업 생태계와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수평적이고 연결형의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 방안 지시를 환영하면서도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시스템반도체는 생태계가 발전해야 하는 분야”라며 “국내 시스템반도체의 많은 부분을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만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전문가는 “2015년까지는 이어지던 시스템반도체 지원이 2016년부터 끊겼다”며 “정부가 지원을 하려면 100개 이상 기업을 전방위 지원할 수 있는 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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