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은 의도된 집중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신체 구조가 그렇다. 뇌가 입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읽을 때 1분 동안 평균 400~800개 단어를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입은 아무리 빨리 말해도 1분에 150~200개 단어 정도밖에 말하지 못한다. 말의 속도가 뇌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뇌의 속도가 말의 속도보다 두 배에서 세 배 빠르다. “아” 하면 “어”까지 진도가 나가고, “A”를 말하는데 'Z'를 생각할 수 있는 게 뇌의 속도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나 Z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하면서 더 빠르게 더 핵심만 나눈다. 140자 트위터와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이 익숙한 세대다. 집중력은 짧지만 멀티플레이 능력이 가능한 세대다. 통계에 따르면 밀레니엄 세대는 2개 화면을 동시에 다루고 집중력이 12초이며, 1997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는 5개 화면을 동시에 다루면서 집중력이 8초 정도 된다고 한다. 가히 경이롭다 할 수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집중력은 매우 얕다.
그래서 요즘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가 유행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과한 정보'라는 뜻으로,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나 달갑지 않은 정보를 나타내는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말에 대해서도 TMI가 아닌지 검열하게 되고, 타인의 말에서도 TMI를 걸러 듣게 된다. 핵심 이외에는 TMI여서 점점 대화가 짧아지고, 단조로워진다. '안궁안물'이라는 약자도 생겼다. '안 궁금하고 안 물어봤다. 그러니 굳이 말하지 마라'라는 뜻이다. 요청하지 않은 정보는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는 세태가 반영됐다. 예전이라면 묻지 않았더라도 상대가 말을 하면 들어주는 게 예의였는데 이제는 '안궁안물'하면 된다. 이것은 장점도 있지만 위험한 부작용도 있다.
직장에서 선배가 '가장 중요한 것'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이것만 말할게요”를 반복하고 나서 “예를 들면”을 남발하면 후배는 금세 산만해진다. 선배의 TMI에 대한 인내심이 바로 바닥난다. 선배를 기다려 주기가 쉽지 않다. “아까 한 말을 또 하네,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 봐야 하는데…. SNS에 댓글 들어왔네. 결론은 빤한데 왜 이렇게 지루하고 길게 말해. 검색하면 다 나오는 얘기야”라고 빠르게 내면의 생각에 빠져든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정신은 여기를 떠났다. 비판하고 저항하며 자기 생각을 듣느라 선배 말을 듣지 못한다. 선배의 말을 들은 것 같지만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고, 자신의 생각을 듣고 있다. 선배의 말 속에서 뭔가를 받아들여서 가치를 찾으려고 듣는 것 대신에 “이미 다 아는데 쓸데없이 잔소리하네, 듣기 싫다. 내가 이걸 왜 들어야 해, 지루하다”라고 자기 마음의 생각을 듣는다. 엄지손가락으로 유튜브 화면을 빠르게 스크롤하듯 빠르게 판단하고, 후다닥 등을 돌린다. 귀 기울여서 사색해야 할 메시지를 검색하듯 대충 흘려듣는다. 그러면서 오해가 쌓이고, 착각이 늘어 간다. 점점 상대 세계와 만나는 것 대신에 자기 세계 속으로 고립된다.
듣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말하기는 훈련해도 듣는 것은 훈련하지 않는다.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듣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오해한다. 듣기는 노력 없이도 되고 준비 없이도 하면 되는 건 줄 안다. 잘 듣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지금 이 상황이 다른 데서는 어디에 적용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경우에 그럴 수 있을까?” “이 경우가 어디에서 또 일어날 수 있을까?” “선배가 이 말을 하는 의도와 이유는 뭘까?” “선배가 원하는 것과 염려는 무엇일까?” “선배가 요청한 일을 추진하는데 뭐가 제약이 될까?” “이것의 영향은 무엇일까?” 등을 탐색하고 탐구하며 들어야 한다.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서 들어야 하고, 배경까지 들어야 한다. 선배의 말 속에 보석이 숨어 있다는 마음으로 배우려고 들어야 한다. TMI라고 지레 단정하고 '안궁안물'이라고 귀를 닫으면 듣고 있어도 듣는 게 아니다. 소리는 그저 소음일 뿐 의미와 교훈이 스며들지 않는다.
이제 TMI만이 아니라 PMI(Please More Information)를 찾아보자. PMI란 더 많은 정보를 확장하고 발견하는 것이다. 지나친 정보를 빼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용한 정보를 캐내는 것도 필요하다. 모든 것은 양질 전환의 법칙을 따른다. 일정 규모 이상의 양이 축적돼야 질이 변화된다. 선배의 말을 TMI라고 여겨서 걸러 듣지 말고 PMI까지 늘려 듣자!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이사 toptm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