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기 내각 구성을 위해 지명한 장관 후보자 7명 중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낙마했다. 두 후보에 대한 야권 공세와 여론 악화에 따른 결정이다.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지명 철회한 첫 사례다.
문 대통령이 지명 철회라는 강수를 두며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청와대 인사검증 라인에 대한 책임론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출범 이후 이 같은 인사 논란이 반복된 데다 두 후보자 모두 연구윤리, 부동산 투기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속 제기된 사안에 관련됐기 때문이다.
◇靑, 인사검증 시스템 한계 인정…책임질 사람은 無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11명에 달한다. 야당은 31일 조 부호자 지명철회 발표 직후 조국 민정수석비서관과 조현옥 인사수석비서관에 대한 책임 사퇴를 요구했다.
그간 청와대는 비슷한 문제 발생시 책임자 문책 대신 인사시스템 보완 방식을 택했다. '7대 인사배제 기준'을 강화해 적용했다. 7대 배제 기준은 병역기피·세금탈루·불법적 재산증식·위장전입·연구 부정행위·음주운전·성 관련 범죄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검증 과정에서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처음 인정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청와대 인사 검증은 공적 기록과 세평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고 시인했다.
조 후보자의 외유성 출장 의혹 및 아들의 호화 유학 의혹 등의 논란에 대해선 사전에 확인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때문에 이를 다 알고도 장관으로 임명을 강행한 부분에 대한 책임에선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윤 수석은 “두 후보자의 경우 7대 배제 기준 검증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다만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며 “7대 배제 기준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해볼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또 다시 인사시스템 보완 카드를 내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 중 책임지겠다고 한 사람은 없느냐”는 기자 질문에 윤 수석은 “그런 논의를 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야당은 이날 후보자 두 명 낙마에 멈추지 않고 청와대 인사 책임자 경질을 강하게 요구했다. 향후 정국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부처에도 책임론…구멍난 사전 조사
조동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지명철회는 관계 부처에도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부실학회 논란은 지난해 과학기술계를 떠들썩하게 한 대형 사건이었다. 과기정통부는 교육부와 합동 조사를 실시해 출연연, 연구기관 종사자 330여명에게 조치를 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웠다. 그럼에도 이를 관장할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실학회 참석 검증이 미흡했다
KAIST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조 후보자는 2017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9회 세계 바이오마커 학회(9th world biomarker congress)'에 참석했다. 학회 참석비는 520여만원이다. 인도계 부실학술단체로 지목받는 'O' 학회 자회사가 운영한 행사다. 본지 취재 결과, 앞서 11월엔 조 후보자 연구실 소속 연구원이 프랑스에서 열린 '생물정보학회 2017(Bioinformatics Congress 2017)'에도 참석했다. 역시 같은 학술단체 자회사 운영 학회다. 한 달 간격으로 부실로 의심받는 학회에 본인, 소속 연구원이 참석했다.
조 후보자는 스페인 학회 참석을 두고 논란이 제기되자 “미국 피츠버그 의대 등에서 저명한 유전체학·분자생물학 전문가가 기조강연을 하는 등 참석자와 발표내용이 충실해 통상적 학회로 인식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높은 연구윤리 기준을 요구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이력이라는 것이 일반적 시선이다. 과기계 관계자는 “2017년 당시 해외에서 이미 부실학회 이슈가 부각되기 시작했다”면서 “학회 주관 단체를 몰랐어도 한 달 사이 유사 학회를 본인과 제자가 참석했다면 학회 주최를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조 후보자 부실학회 참석 이력이 청와대, 과기정통부 검증을 거치는 동안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 전수 조사에서 조 후보자 부실 학회 참석 이력은 걸러지지 않았다. 조 후보자가 몸담은 KAIST도 조사 대상이었다. 청와대는 “교육부와 관련 기관의 조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았기에,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면서 정부 조사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부실학회 거름망, 왜 구멍 났나
과기계는 부실학회 특성, 정부 조사 방식 등을 감안하면 거름망 자체가 부실했다고 분석했다. 과기정통부와 교육부는 지난해 238개 대학, 4대 과학기술원(KAIST, GIST, DGIST, UNIST)과 26개 과기출연(연)을 대상으로 최근 5년 간(2014∼2018년) 부실학술단체로 지목된 'O' 'W'가 주관한 행사 참가 실태를 전수조사했다.
조사 결과, 5년간 한번이라도 해당 학회 참가한 기관은 조사대상 기관의 40%인 총 108개 기관(대학 83개, 출연연 21개, 과기원4개)으로 나타났다. 두 학회에 참가한 횟수는 총 1578회, 참가한 연구자 수는 총 1317명, 그중 2회 이상 참가자는 180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유명민 과기정통부 장관, 이진석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이 간담회를 갖고 해당자 징계를 약속했다.
당시 과기정통부와 교육부는 대학, 4대 과기원, 출연연 등에 'O' 'W' 주관 학회 참석 이력을 제출을 요구하면서 세부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기관별 조사 방법, 범위에 차이가 생겼다. 출연연 조사를 주관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O' 자회사까지 조사한 반면 KAIST는 직접 운영한 학회만 대상으로 삼았다. 학교, 연구기관 대다수가 부실학술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직접 학회를 검색하다 보니 자회사가 운영하는 학회 등은 걸러지지 않았다.
조 후보자가 학회를 참석한 2017년 당시 'O' 산하 학술지는 500여개다. 여기서 주관하는 콘퍼런스 수는 10배 가량 늘어난다. 주 후보자가 참석한 자회사 주관 행사를 합치면 수천건으로 늘어난다. 정부가 고강도 조사를 계획했지만 결과적으로 세부 기준 부재, 물리적 한계 등으로 조사에 구멍이 생겼다.
과기부 관계자는 “지난해 조사에서 자회사 주관 콘퍼런스까지 세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다만, 조 후보자가 참석한 학회 참석으로 징계 받은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최호 정책기자 snoop@etnews.com
공동취재 성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