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김정식 회장 별세]전자산업 대부, 인재 사랑 남기고 떠나다

11일 향년 90세로 별세한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은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을 이끌어 온 산증인이다. 흑백가전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컴퓨터, 반도체, 스마트폰으로 발전하기까지 핵심 부품인 인쇄회로기판(PCB) 기술 개발과 국산화에 전념하며 회사를 국내 대표 부품업체로 키워냈다.

1929년생인 김 회장은 열아홉살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며 여동생 셋을 책임져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 됐다. 1948년 서울대 전자통신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조선호텔에 웨이터로 취직해 식당 한구석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자며 낮에는 공부를 하고 아침과 야간에는 일을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힘들게 공부한 경험 때문에 직원 중 누군가가 야간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등록금에 보태 쓰라고 봉투를 주기도 했다. 이후 아예 사내 복지기금을 만들어 학비보조금을 지원했고 이후 활발한 장학 사업과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는 계기가 됐다.

대학 재학 중 6.25 전쟁이 터져 공군에서 통신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1956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공군에서 함께 복무했던 통신장교 출신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전자 관련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1969년 국내에 전자사업 기반이 전무하던 시절 전자산업조사단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지역을 순회한 후 전자사업 핵심 부품인 PCB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발견하고 1972년 PCB 전문업체 대덕전자를 창업했다. 대덕전자는 초기 라디오용 단면 PCB에서 시작해 첨단 반도체와 스마트폰용 PCB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PCB 생산 외길을 걷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김 회장은 2006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한국 경제발전 숨은 공로자인 '한국을 일으킨 60인의 엔지니어' 중 1인으로 선정됐다.

기업을 경영하며 기술과 품질에 대한 신념 외에도 기업인으로서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과 '공동운명체'라는 두 가지 정신을 강조해왔다. 사재를 들여 1991년 해동과학문화재단을, 2002년 대덕복지재단을 각각 설립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해왔다.

올해 2월에는 모교인 서울대에 인공지능(AI) 센터 건립에 써달라며 사재 500억원을 쾌척하면서 산업계와 교육계에 많은 화제를 낳았다.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에도 직접 모교를 찾아 기부금 출연 협약을 맺었다. 주변에서는 이를 후학 양성에 대한 고인의 마지막 유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국내 언론과는 생전 마지막으로 전자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래 세대를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길러 내는 것만이 변화할 미래에 대비하는 길”이라는 남다른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