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KB국민·롯데·삼성·신한·비씨·NH농협·하나·현대 등 8개 카드사는 간편결제 확산을 위해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시범사업을 펼치기로 합의했다.
민간 카드사가 뭉쳐 결제 혁신을 고도화하는 첫 프로젝트였다. 서울 명동 등에 NFC시범존을 구축하고, NFC결제를 확산하자는 취지였다. 약 8만여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 사업은 가맹점 확보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NFC결제단말기를 보급해야 하는데, 정부가 가맹점에 단말기를 무상 보급하면 '불법 리베이트'로 간주 처벌하겠다고 금지시켰다. 결국 사업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막을 내렸다.
3년여가 흘러 정부가 소상공인 간편결제 사업 제로페이를 시작했다. 간편결제 혁신이라는 목표는 동일하다. 그러자 금융위원회가 '금융혁신 인프라 방안'에 간편결제 단말기 보급 개선안을 끼워 넣었다. 엄격히 금지된 리베이트 규제를 다시 풀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간편결제 등 새로운 결제 방식이 가능한 단말기를 무상 보급하는 경우에는 부당한 보상금(리베이트)에 해당되지 않게 하겠다고 법 개정을 예고했다. 대형가맹점 '갑질' 수단으로 활용되는 우회 리베이트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왜 리베이트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나
정부가 업계 반발에도 리베이트를 부활시키는 주된 이유는 우리나라 금융결제 시장이 지나치게 신용카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제로페이 사업의 숨겨진 목표도 신용카드 결제 비중을 낮추고, 결제 주도권을 은행 위주로 바꾸겠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대부분 국가가 현금과 직불형카드, 신용카드 등으로 지급 수단 이용비중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 결제시장은 신용카드를 통한 결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는 55%, 건수 기준으로는 50%에 이른다. 반면 스웨덴과 덴마크 등은 직불카드 비중이 각각 69%, 70%를 차지한다. 신용카드 비중은 각각 20%, 3%에 불과하다.
신용카드 중심 결제 체계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외상결제로 인해 가계 건전성에 무리가 가고 고비용 상거래 구조를 고착시키는 만큼 직불결제 방식의 간편결제를 확산시키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금융위가 2월 발표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에도 이런 방침이 그대로 녹아있다. 오픈뱅킹 도입과 전자금융법 개정으로 다양한 간편결제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리베이트 규제 완화는) 신용카드 중심 결제 문화를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면서 “신용카드 업체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빅데이터를 통한 컨설팅 등 정보 결합 업무를 허용한 만큼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 비중 축소로 인해 발생하는 사업 손실을 신규업무 허용 등으로 보완해 주겠다는 것이다.
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국내 결제단말기를 보급하는 12개 밴사는 신용카드밴협회를 통해 최근 금융위원회에 리베이트 규제를 계속 유지해달라는 입장문을 전달했다. 카드사나 결제단말기 제조사 등도 같은 처지다.
◇리베이트 완화, 편법 악용으로 시장 혼란 불보듯
업계는 우선 정부 리베이트 규제 완화 방침이 대형가맹점에 과도한 금품을 지급하는 악습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여전법상 대형가맹점에 대한 리베이트 금지 규정이 제정된 이유는 대형가맹점에 지급되던 리베이트 자금이나 물품 비용 부담을 중소형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로 채워 넣는 악순환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카드사와 밴사는 대형가맹점 유치를 위해 막대한 리베이트를 지급해왔고, 이 자금을 중소형 가맹점 수수료로 메꾸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리베이트 금지 규정이 법으로 제정됐다. 그런데 정부가 또다시 유권해석 등을 통해 예외규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는 '간편결제 등 새로운 결제 방식이 가능한 단말기'에 한해 예외 규정을 신설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규정을 놓고 업계는 지나치게 모호한 규정이며, 현재 나오는 대부분의 결제 단말기가 간편결제를 혼용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간편결제 전용 단말기'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사각지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외가 적용되면 결국 연매출 3억원 이상 대형가맹점이 모호한 규정을 통해 편법으로 단말기를 무상 제공받아 간편결제 뿐 아니라 일반 카드결제나 다양한 결제를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체 리베이트 금지조항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위원회가 주장하는 새로운 결제방식의 대부분은 신용카드 거래가 아닌 계좌이체, 선불전자지급수단이다. 형식적으로 이런 사업을 하는 회사들은 전자금융사업자로 분류된다. 여전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전자금융사업자는 밴사업자들이 겸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일 행위를 하고도 전자금융사업로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은 형평성 문제, 정부 명확한 규제완화 근거 있어야
이 같은 정부 계획에 업계가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리베이트 규제 완화 조치에 명확한 근거가 없고 형평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과거 민간 카드사가 주도한 사업에는 무상 단말기 보급을 금지하고 이제 와서 정부가 추진하는 제로페이 등 활성화를 위해 다시 규제를 풀어주는 모순된 정책 운용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과거 금융당국과 협의를 거쳐 리베이트 영업 근절을 위한 모범규준까지 제정했다.
이 같은 노력이 정부에 의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대형 밴사 관계자는 “금융위원회 유권 해석이 자칫 정착 단계에 있는 리베이트 없는 영업환경을 다시 예전 혼탁한 불법 리베이트가 남용됐던 시장으로 변질시킬까 우려스럽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관련 금융위는 우선 그간 금지됐던 리베이트와 관련해서는 간편결제 사업자에 한해 허용하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내린 이후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종합지급결제업 등이 전자금융법 개정으로 새롭게 도입되는 만큼 법 개정 추진 상황에 따라 가이드라인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마지막으로 과거 리베이트 제공 사례를 본지 기자에 전달하며, 금융당국에 입장을 반드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과거 한 대형 유통 가맹점은 입찰 평가 항목에 '계열사 지원'항목을 배점표에 넣었다. 밴사 계열사를 통해 금전 또는 그에 상응하는 결제단말기 지원방안을 강구하라고 압박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가맹점 우회 지원 의혹사례도 폭로했다. 민자 고속도로 휴게소 내 가맹점 입찰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 밴사가 최종 입찰자로 선정됐다. 역시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이 결제단말기 등을 우회로 지원했다.
관련 업계는 법망을 피해 교묘하게 이뤄지는 밴 리베이트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엄정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금융당국의 리베이트 완화조치가 보다 명확하고 근거 있는 미세 가이드라인을 담아야하는 이유다. 편법으로 발생하는 비용의 소비자 전가는 물론 정직한 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태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