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끝자락이다. 4월은 과학의 달이었다. 21일 과학의 날을 기념해 과학축제가 서울 청계천, 보신각공원, 세운상가 등 도심 곳곳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축제를 빌어 오랜만에 과학이 세상과 어울린 뜻깊은 자리였다. 과학이 국가 행정 영역으로 들어온 시점도 과학의 날 지정을 즈음한 1960년대였다. 경제 성장과 맞물려 과학기술 중요성이 부각되면서부터다. 뒤돌아보면 대략 10년 단위로 과학기술은 변화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는 과학기술 씨를 뿌리고 터전을 일구는 진흥기였다. 1970년대는 경제 기본 방향이 중화학공업에 맞춰지면서 이를 구체화하는 게 목적이었다. 기술 자립을 위한 조성기라 할 수 있다. 1980년대는 수출 입국 대신 기술 입국을 강조하면서 기술 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중진국에 진입한 1990년대는 과학기술 부흥기였다. 범부처 과학기술 종합계획이 수립되고, 국가 주도 중장기 플랜이 세워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과학기술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됐다. 지식 기반 사회에 맞게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차세대 성장 산업에 집중했다. 지식 성숙도와 경제 성장에 따라 과학기술 색깔을 달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과학 행정 반세기를 넘겼지만 핵심은 역시 '연구개발(R&D)'이다. R&D 투자는 과학정책의 전부라 할 정도로 정부, 학계, 산업계, 연구기관 모두에 최대 관심사다. 예산 편성 때면 규모와 방향을 놓고 갑론을박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진다. 두 주제가 항상 논쟁거리다. R&D 투자의 적정성과 효율성 논란이다. 'R&D 예산이 합당한지'와 'R&D 투자가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놓고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늘어나는 예산과 맞물려 논쟁도 뜨겁지만 사실 명쾌한 해답은 없다. 국내총생산(GDP)과 인구 규모, 과학 경쟁력, 국민 관심도, 민간 R&D 현황, 사업화 정도에 따라 기준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과학기술 목적과 방향이 바뀌었듯 새로운 좌표는 필요하다. 해답이 안 보이면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최근 과학기술의 큰 흐름은 추격에서 선도형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창의적인 기획력과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R&D 투자도 규모가 아니라 가치에 방점이 찍히는 추세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교리인 '도그마'처럼 R&D 투자 확대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투자와 성과는 독립 변수다. 양적인 투자에 비례해 성과가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정상에 오른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만큼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에서 널리 인용되는 '스웨덴 패러독스'를 되새겨 봐야 한다. 볼보로 유명한 유럽 대표 강소국 스웨덴은 R&D 투자에서 세계 최고지만 정작 기술이 기업 가치로 이어지지 않아 연구 대상이었다.
도그마와 패러독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협업'이다. 기술 개발과 경제 실현 주체끼리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연구기관은 국가 난제를 위한 과학적 해법을 내놓는 데 집중하고, 산·학·연 네트워크를 정비해서 융합 연구로 시너지를 높여야 한다. 아직도 우리 연구 풍토는 폐쇄적이다. 부처와 연구기관별 칸막이도 심하고, 기업은 연구기관이나 대학 R&D기술을 못 미더워한다. 국가 예산을 투입한 기술을 저평가하는 풍토도 뿌리 깊다. 시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정부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발상도 바꿔야 한다. 질적 성과와 가치 창출을 두 축으로 과학행정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