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병인가?]<7> 게임과용은 증상...의료화는 질병 원인 또는 발생기전으로 오인될 우려

이경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이경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세계보건기구(WHO) 게임 질병코드 등재로 과잉진단이 생기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왜곡된 정보가 제공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의인성 질환을 만들어 건강불안을 부채질하고 필요 이상 의료 행위를 발생시키면서 도리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경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게임 관련 의료화는 정치, 사회, 문화적 의도를 가지고 왜곡하는 과잉의료화”라며 “과잉치료, 경제적 낭비와 자원 배분 왜곡, 건강 불안과 병팔이 등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건 전문가가 모여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 원인 확정이 아니다”며 “이를 질병으로 보는 건 논리적 비약을 넘어 음험한 음모”라고 말했다.

의료화는 인간 문제를 질병으로 파악하고 병인론과 치료법 관점에서 대응하는 경향이다. 역사, 사회적으로 전문 지식·기술이 있는 독점적 전문가 집단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독점권에 대중을 의존시키려 사회를 재구성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의사가 전문가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적인 전략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아이가 열이나면 집에서 돌봤지만 지금은 응급실로 바로 데려간다. 사회 문화적으로 진보된 행위처럼 여겨지게 했다. 또 다른 의료화 추동력인 자본주의, 상품화 영향이다.

이 교수는 “대중은 서비스가 효용성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집에서 병이 걸리는 원인을 살펴보고 환경을 관리하는 게 훨씬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과잉의료화는 수익화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게임장애가 질병이 되면 국내 의료 현실을 고려할 때 과잉진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국내 보험체계에서 비보험은 수가가 높다. 그래서 자기공명영상(MRI)을 코드화하는 걸 반대하는 의료인도 존재한다. 비보험 치료 인센티브가 잘못된 몇몇 의료인과 의료제도 때문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

그는 “수가 차이는 결국 금전적인 목적으로 연결된다”며 “새로 붙은 중독코드는 적절한 보험이 인가되기 전까지 비보험으로 치료돼 그동안 돈을 벌어들일 기회가 생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 문제행동을 보이는 청소년을 다루는 의료인이 보호자나 교사 기대에 순응해서 의료 관리 행태를 왜곡할 수 있다. 문제학생과 갈등을 겪는 보호자나 교사들에게 질병이라는 다소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불안증, 우울증 등 근본적이고 선행 병발하는 질환 코드를 부여하는 것보다 게임 중독 코드를 부여하는 것이 보호자 거부감을 피하고 수익성 측면에서 의료인에게 유리하다.

'새로운 포장' 유혹도 게임질병화를 부추긴다.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논문을 통해 사회적 명성과 지원금, 연구비를 얻는다. 기존에는 없는 질병코드를 새롭게 포장하는 연구 자체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블루오션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약물 치료, 상담 등 고가 의료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우려가 있다”며 “특히 초기에는 비보험 항목으로 분류돼 규제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게임장애 질병화는 문제점을 가진다. 연구와 논의가 충분하지 못해 행위자체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별 행동이나 행위 수준에서 질병을 분류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답습하고 있다. 행동 신경학적 기전을 중심으로 질병을 규정하고 분류해야 한다는 의학적 필요성과 최근 의·과학 연구의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

이 교수는 “질병을 분류할 때 병의 발생 기전, 발병 원인이 명확해야 의학적으로 그리고 의료적으로 유용성이 있다”며 “하지만 증상에 불과한 게임 과용을 질병코드화 함으로써 질병 원인이나 발생 기전인 것처럼 오인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국내 담론이 과도한 의료화를 띄는 점도 지적했다. 게임을 창조하고 활용하는 것은 기술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경제적 활동이므로 선용은 물론 과용, 오용, 남용 등 부작용도 다양한 관점과 층위에서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내 담론은 의료적 시각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의료 관점에서만 사회문제를 다루게 되면 복잡한 사회현상을 이분법 잣대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정상화' 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분 때문에 선악 평가로 이끌린다. 단편 요인에 치중해 여러 요인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다.

게임장애와 관련성이 높은 요인인 소외감 등 부정적 감정 경험, 과도한 경쟁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 부모나 가족 간 갈등이나 가정 폭력과 연결관계를 소홀히 하기 쉽다.

이 교수는 “현재 상황은 과몰입, 중독 등 의료화적 관점으로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라며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데 한계와 위험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