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다음 달 취임 2년을 맞는다. 취임 때부터 밝힌 단기(1년차)·중기(2년차) 과제를 마무리하고 장기(3년차) 과제에 돌입하는 시기다. 예상대로 인터뷰는 지난 2년 소회를 밝히는 데에는 거의 시간이 할애되지 않았다. 현안이 산적했고 3년차 과제 달성도 만만찮은 탓이다.
최근 주요 기업 주주총회를 '기대'와 '우려'로 평가하며 “일부 기업이 정부 개혁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로 변화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10대 미만 중견기업도 시대 흐름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3년차 핵심 과제로는 부처 간 협력을 바탕으로 한 불공정하도급·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 문제 해결을 꼽았다.
1시간 4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김 위원장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의견을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는 이달 예정된 직원 워크숍에 '특별게스트'로 가수 최백호 씨를 초대했다고 밝히고 특고 문제, 문화예술 부문 공정거래에 대한 목소리를 듣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취임 2년을 맞는다, 그간 성과를 평가한다면.
▲국민의 높아진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업무에 임했다. 일감 몰아주기,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에 집중해 시장에서 긍정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공정위 업무, 나아가 공정경제가 추상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국민 인식이 전환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남은 임기 동안 국민이 실제로 삶이 변하고 있다고 체감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그런 평가에 대해 다르게 느끼는 기업이 있는 것 같다.
▲안타깝다. 이번 정부 들어 공정위가 갑을관계 문제 해결에 나서며 새로 맺어지는 계약에 대해선 과거보다 개선된 것이 트렌드로 확인된다. '을'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은 새로운 계약이 아닌 과거 계약 때문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일정 시간이 지나 새로운 계약으로 바뀌면 체감이 높아질 것이다. 또 하나 어려움은 폐업 단계 민원이나 공정위에 신고 또는 소송 중인 분들에 대한 것이다. 거래구조 복원 문제가 아닌, 피해 보상 차원이기 때문에 해소가 쉽지 않다.
-최근 경제상황을 두고도 민간에선 정부와 다른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변명을 해서도 안 되고 통하지도 않는다. 성과를 갖고 말해야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변명하고 항변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럼에도 1분기 성과(GDP 0.3% 하락)가 그렇게 나타난 것은 곤혹스럽다. 대외경제 환경이 그렇게 빨리 개선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1997년, 2008년 같은 위기라고 부를 상황이 가까운 시일 내 재발할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턴어라운드할 시점이 예상보다 조금 뒤로 미뤄진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경제상황을 너무 긍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나.
▲정부가 연초부터 재정 집행을 강조했고 지방자치단체에 교부금을 빨리 내려 보냈다. 그러나 지자체, 교육청 등 재정 집행률이 상당히 낮았다. 한국은행이 2분기 GDP 1.2% 성장을 예상했는데 이것은 2분기에 지방 재정이 집중 집행되면 1분기 감소를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제민주화 현안 얘기를 해보자. 최근 주주총회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있다. 우선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고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총에서 자본시장 내 경제주체가 목소리를 내 일정한 성과를 냈다. '시장 밖' 목소리가 아닌 '시장 안' 목소리로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자본시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 개혁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기대로 시간을 끄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불가피하고 빠를수록 비용을 줄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은 시간을 끌면서 '일단 버티고 보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기업집단 업무와 관련해 정부와 약속한 스케줄을 늦추는 기업이 일부 있다. 어쩔 수 없는 사례도 있지만 합리적 이유 없이 의사결정을 늦추는 경우가 있었다.
공정경제 기조는 경기가 좋다고 과속하지 않고 경기가 나쁘다고 후퇴하지 않는 '예측 가능하게, 일정한 속도'로 간다. 개혁이 늦춰질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기업이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올해는 대기업이 아닌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초점을 맞춘 게 눈에 띈다.
▲사익편취 규제는 자산총액 5조원 미만인 중견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도 편법적 경영권 승계, 부실 계열사 지원을 위한 부당내부거래 유인이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이나 산업분야를 들여다보고 있는지는 말하기 곤란하다.
-이달 말 중견그룹과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던데.
▲그간 10대 그룹에 대해선 공정위도 시장도 관심이 많았다. 10대 미만 그룹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그래서 변화 속도도 늦은 것 같다. 재벌에겐 비즈니스 리스크, 거버넌스 리스크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10대 미만 그룹이 리스크가 더 큰 것 같다. 11위부터 30위까지 중견그룹을 만나 시대 흐름에 동참해주길 당부할 계획이다. 두 리스크에 대해 중견그룹이 더 선제적으로 자발적으로 대응해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임기 3년차 과제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나.
▲3년차에는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 과제에 집중하겠다. 하도급 부문은 공정위 차원에서 추진했던 대책을 국민 눈높이에서 중간 점검하고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 추가개선 과제를 발굴하겠다.
특고 분야에서 불공정거래 관행을 예방·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후적·개별적 규제 속성상 공정거래법 집행만으로는 직종 전반 거래관행 개선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해 관계부처와 함께 해당 직종 전반에 적용시킬 수 있는 연성 규범(soft law)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최근 취임했다. 중기부와 협력 강화도 계획 중인가.
▲범정부 하도급대책은 박영선 장관과 협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공정위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에 메시지를 던지는 역할이라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기부다. 공정위와 중기부가 협업해 중소기업 문제, 특히 불공정 하도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내년 예산안 편성 작업이 본격화됐다. 공정위에 필요한 예산이 있다면.
▲개발도상국은 경쟁법, 경쟁당국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세안, 독립국가연합(CIS), 발칸 지역 국가들은 경쟁법 수요가 많다. 이런 나라가 참고할 수 있는 최신 경험을 우리가 갖고 있다. 3년 정도 준비를 거쳐 체계적으로 기술지원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에 있어 효과적인 영역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공정위가 가진 기업 데이터의 국가통계화다. 공정위가 하도급 서면실태조사로 1년에 10만개 기업을 점검한다. 1997년부터 20년 이상 했다. 이런 데이터를 보고 싶어 하는 연구자가 많다. 데이터 공개 기반을 만들려면 국가통계화와 전산처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난해 직원 워크숍 때 백종원 씨를 초대해 화제가 됐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나.
▲가수 최백호 씨를 모시기로 했다. 최백호 씨가 사회 활동을 많이 한다. 젊은 뮤지션을 돕는 '뮤지스땅스' 소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공정위로선 협업이 필요한 부분이 특고 관련 사안이다. 특고 대표 사례가 방송국 작가, 웹툰 작가 등이다. 최백호 씨에게 한국 사회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개선하기 위해 정부의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공정위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말씀을 듣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임기가 1년 남았는데 이후 계획도 듣고 싶다.
▲임기를 마치면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공직에서 물러나면 사회 활동은 스톱할 것이다. 이후 10년이 지난 다음에 책을 하나 쓸 계획이다. 20년간 시민단체 활동, 공직 생활을 담은 내용이다. 기밀이라 불리지 않을 내용을 시간이 지난 후에 쉬운 글로 쓰고 싶다.
대담=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 부장, 정리=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