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 A·B구역 사업을 수주한 KT가 사업에 착수하자 입장을 바꿔 논란이다.
일부 조정이 불가피하더라도 수주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중요 제안 내용을 변경하는 건 불공정 사유라는 지적이다. 과도한 스펙을 제안하고 수주 이후 내용을 수정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 공공 입찰 질서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본지가 확인한 KT 제안서에 따르면 KT는 서울, 대구, 제주 3센터(3원화)에 각각 교환기(EPC) 4식·4식·2식을 설치하고 모두 실제 올 액티브(Full 부하분산) 가동하는 9중화 구성방식을 제안했다.
올 액티브는 비상상황에 대비, 백업(예비) 장비를 평소에도 가동하는 방식이다. 주장비에 문제가 발생해도 실시간 복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KT는 사업 시작 이후 요구사항 정의 과정에서 서울에 액티브-스탠바이로 구성된 EPC 2식, 대구에 2식, 제주에 1식 등 5중화 및 액티브-스탠바이 형태로 수정했다. 평소 EPC 9대를 모두 가동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스탠바이 상태 EPC를 켜고 가동 준비까지 마치는 데 짧게는 15분, 길게는 2시간 이상도 걸릴 수 있다”며 “긴급 상황 시 장비를 켜는 시간까지 통화가 안 되면 재난망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제안서에 올 액티브란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중화 논란에 대해서는 '아키텍처를 바라보는 해석의 차이'일 뿐 센터 다중화로 보완이 가능하고 항상 전체 가동 상태가 아니더라도 예비 장비를 통해 다중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KT가 수정한 건 EPC뿐만 아니다. 5중화-올 액티브 구성을 제안했던 인터넷 멀티미디어 서브시스템(IMS), 미션크리티컬 푸시투토크(MCPTT) 역시 액티브-스탠바이 형태로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추가 제안 내용인 철탑과 강관주, 양자암호통신은 향후 적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KT 입장 선회는 비용 절감이 목적이다. 가동하는 장비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면 돼 라이선스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KT가 입장을 변경하자 행정안전부와 감리업체가 문제를 제기하며 두 달 이상 논의가 이어졌다.
재난망 입찰에 참여했던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입찰에 중요 영향을 미친 제안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공정입찰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통신 전문가는 “제안서 원안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은 국가계약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며 “특히 다중화는 재난망 핵심 사안인 만큼 비용이 결정적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KT 변경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재난망 구축 일정을 감안해 수용 방향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심진홍 행안부 재난망사업단장은 “올 액티브가 아니더라도 비상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논란에 대해서도 경쟁사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감리 업체와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난망 중요성을 감안하면 KT가 당초 제안했던 올 액티브 형태로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입찰 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중요 제안 내용이 사업 수주 이후 바뀌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정예린기자 yeslin@etnews.com,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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