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손발이 맞아 간다. 2년 동안 우왕좌왕하며 벤처업계의 속을 태우던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해 주고 있다. 성장 단계에 있는 스케일 업 기업에도 대규모 자금이 지원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2년까지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전용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창업과 신생 벤처기업에 돈줄이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크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덕분에 일자리 창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창업 초기 회사의 일자리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지만 스케일 업을 거친 기업이 늘수록 양질의 일자리는 많아진다.
정부가 2년 가까이 이어진 업계의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다. 규제 샌드박스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끝에 탄생했다. 정부는 '선 허용, 후 규제' 원칙에 따라 규제 체계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큰 그림은 그리는 사이 급한 불부터 꺼 달라는 시장 요구를 수용, 시범 사업이라도 할 수 있게 길을 열었다. 벤처기업 확인제도도 2006년 이후 12년 만에 공공에서 민간 주도로 바뀐다. 10년 넘게 주장해 온 업계의 숙원이 늦게나마 풀어지게 됐다. 더디게 온 만큼 이제 매듭을 잘 지어야 한다. 어렵게 온 골문 앞에서 헛발질을 해선 안 된다.
쉬운 숙제는 하나도 없다. 스케일업 전용펀드 역시 세심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고속 성장세에 있는 기업에는 정부가 아니어도 민간 투자자가 몰리기 마련이다. 이때 돈을 주겠다고 선심 쓰는 것은 혈세 낭비다. 벤처 생태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먼저 뒷받침돼야 한다. 시장을 모르고는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없다.
규제 샌드박스도 지지를 잃고 있다. '희망고문'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반대 의견 없이 가벼운 주제만 수술대에 올려놓고 처리 실적만 쌓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부처 간 이해관계가 맞서면서 민감한 규제는 손도 못 대고 있다는 주장도 뜨겁다. 혁신은 반드시 기존 산업과 마찰을 일으킨다. 이를 두려워한다면 규제 개선 논의는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벤처기업 확인제도도 순항을 장담하기에는 이르다. 잡음도 꾸준하게 새어나오고 있다. 10명 남짓한 민간 전문위원들에게 최종 결정권을 넘겨줬지만 이것만으로는 민간 주도로 볼 수 없다. 한 해 1만개가 넘는 업체를 평가해서 선별하는 전체 절차 가운데 일부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다. 팬들은 골문 앞에서 더 열광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2년을 기다린 기업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