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기술은 오래도록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도 기여한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인 평균 수명은 18세에 불과했다. 19세기 중반 유럽 선진국 평균 수명도 45세 수준이었다. 80세를 넘어선 지금과는 차이가 컸다. 합성의약품이 가져다 준 변화다.
합성의약품은 원료를 화학 합성해 만드는 의약품이다. 미생물과 바이러스 감염을 막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데 쓰인다. 해열·진통제의 대명사격인 '아스피린'도 화합물인 아세틸살리실산을 활용한 합성의약품이다.
요즘 들어 합성의약품과 구분되는 바이오신약, 천연물 신약 등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합성의약품 비중이 높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합성신약 비중은 전체 신약 가운데 72% 수준이다.
합성의약품 개발은 생명 및 건강과 직결되는 분야다. 국내시장 규모만 2017년 기준 22조원에 달한다. 많은 산·학·연 기관이 합성신약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이유다.
이 분야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인 한국화학연구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신약개발은 약물표적 발굴, 약효검색, 선도물질 발굴,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 임상1~3, 시장진출 등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섣불리 뛰어들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화학연은 기초 연구로 개발한 물질을 바이오벤처에 연계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신약이 나오기까지 과정에서 가장 위험부담이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의약바이오연구본부가 핵심 역할을 한다.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 임상까지 넘어간 사례를 다수 창출했다. 이광호 화학연 박사팀은 성균관대 연구팀과 함께 궤양성대장염 치료제 후보물질인 'BBT-401'을 개발해 브릿지바이오에 이전했다. 최근 늘어나는 염증성 장질환 치료에 효과적인 약으로, 지난해 10월 임상 1상 과정을 마쳤다.
이광호 박사팀은 또 올해 초 폐암을 비롯해 다양한 암을 표적으로 둔 항암 후보물질을 개발해 브릿지바이오에 이전했다.
의약품용 화합물 제조 기반 기술성과도 있다. 한수봉 박사팀은 항암제나 항생제에 쓰이는 주요 원료인 피리딘, 퀴놀린계 화합물을 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만드는 합성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구현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시약으로 반응 공정을 간편화 해 화합물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했다.
의약바이오연구본부는 개발 의약품 효능과 독성을 이전보다 쉽게 파악하는 플랫폼 기술성과도 내고 있다. 본부 산하 바이오기반기술연구센터를 이끄는 배명애 센터장은 열대어인 '제브라피쉬'를 활용한 생체 모델 플랫폼을 만들었다. 제브라피쉬는 사람과 유전자가 80% 이상 같은 어종으로, 각종 의약품 실험에 유용하다. 특히 몸이 투명해 외부에서 바로 의약품 효과를 확인할 수 있고 의약품 투여 24시간 안에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혁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은 “본부는 화학연 설립초기부터 의약 분야 연구를 거듭해 다양한 신약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신약 물질을 찾아내 공급하는 신약 파이프라인 연구, 감염병 연구, 각종 기반 기술 연구로 국민 건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