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구요원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국방부의 감축 시도, 과학기술원을 비롯한 이공계 교육현장·과학기술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연구요원제도는 병역자원 일부를 선발해 연구개발(R&D)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는 병역대체복무다. 이공계 석사학위를 취득한 학생이 대상이다. 1973년부터 국내 과학기술원과 이공계 대학, 나아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확대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위기는 2016년 찾아왔다. 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제도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도 취지를 오해한 특혜 시비도 이어졌다. 이공계 교육현장과 과학기술계에서는 극렬하게 반발했지만 논란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전문연구요원제도 혁신을 위한 토론회'는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지속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였다. 전문연구요원 제도와 관련, 주요 이해 기관인 KAIST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함께 행사를 열었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를 좌장으로 이정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인재정책센터장, 이기훈 GIST 안보과학기술센터 교수, 이창훈 DGIST 입학처장, 박명곤 UNIST 대학원총학생회장이 패널로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에서는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과기원을 비롯한 이공계 교육현장과 과학기술계가 큰 위기를 맡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국내 과기원을 비롯한 국내 이공계 대학원 진학률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봤다. 이창훈 DGIST 입학처장은 소속 학교 내 설문조사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이 약 70% 수준이지만, 축소·폐지 시 기준으로는 20% 밖에 되지 않았다”며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진로 설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 중 86.6%였다”고 밝혔다.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이공계 대학원 진학에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는 것이 이 처장의 설명이다.
박명곤 UNIST 대학원총학생회장은 전문연구요원제도가 흔들리면서 실제 대학원 진학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대학원생을 모집할 때 전문연구요원 선발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남학생 진학률이 크게 떨어졌다”며 “2016년 60%던 것이 지난해 2018년에는 40%로 뚝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이어 “각 지역에 위치한 과기원 상황을 고려하면 축소나 폐지가 아니라 도리어 확대해야할 상황”이라고 피력했다.
앞으로 전문연구요원 제도 중요성이 지난 과거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정재 KISTEP 센터장은 “계속해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으로,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면 과학기술 혁신 기반 신산업을 창출하고, 이를 성장동력화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수많은 공학자를 필요로 할 텐 데, 전문연구요원제도와 같은 인재유입 촉진제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제도를 지키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국방부, 나아가 국민의 인식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공계 교육현장과 과학기술계가 스스로 전문연구요원 제도 효용성을 입증하고, 흔들리는 제도가 바로 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재 센터장은 “전문연구요원제도에 부정적 의견도 필요하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 제도를 거친 인재가 우리 사회에 어떤 보탬이 됐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동안은 전문연구요원제도로 인력 양성에만 치중했는데, 앞으로는 제도를 거친 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국가에 어떤 기여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연구요원 처우 개선과 같은 혁신도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기훈 GIST 교수는 “임금과 같은 경제적인 보상, 신분 보장은 전문연구요원제도가 바로 서는데 꼭 필요한 부분”이라며 “현재 전문연구요원 활용 현장에서 생기는 일부 위협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지난달 각 과기원이 공동 출범한 '과기원 공동사무국'을 통해 공통된 기관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이광형 KAIST 교학부총장은 토론회에 앞서 “국방은 병사 숫자만이 아니라 기술력과 경제력을 함께 봐야 하고, 전문연구요원제도 역시 이런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며 “국방부 혼자가 아닌 다자가 함께 종합 검토하고, 좋은 안이 실현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