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에서 마련한 세 가지 개편(안)을 공개했다. 누진구간 또는 단계를 완화해 여름 폭염시 냉방비 부담을 덜어주는 게 골자다. 45년간 유지해온 누진제를 전면 폐지하는 파격 대안도 담았다.
하지만 '연간 수천억에 달하는 재원을 누가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팽팽한 기싸움을 예고했다. 정부는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한전에 재원을 부담토록 하겠다고 선언했고, 한전은 국가 정책비용까지 떠안을 순 없다며 국비로 해결하라고 반박했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요금 누진제 TF'에서 세 가지 대안을 마련했다며 이를 공개했다.
현행 누진제는 월 전기 사용량이 200㎾h 이하 구간에는 1㎾h당 93.3원, 201∼400㎾h 구간에는 187.9원, 400㎾h 초과 구간에는 280.6원을 각각 부과한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다.
정부가 내놓은 전기요금 개편 1안은 기존 1~3단계 누진체계를 유지하면서 하계(7~8월)에만 별도로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1단계 구간을 200㎾h 이하에서 300㎾h 이하로, 2단계 구간을 201~400㎾h에서 301~450㎾h로, 3단계 구간을 401㎾h 이상에서 451㎾h 이상으로 조정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할인해주던 것을 상시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전국 1629만 가구가 월 1만142원씩 할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2안은 하계(7~8월)에만 누진제 3단계를 폐지하는 안이다. 전기 사용량이 200㎾h 이하인 가구에는 93.3원 요금을 적용하고 이후부터는 2단계 요금인 187.9원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폭염기간에 609만 가구가 월 1만7864원씩 할인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3안은 전기 사용량에 상관없이 1㎾h당 125.5원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누진제를 폐지하는 안이다. 정부는 887만 가구가 1년 동안 매달 9951원씩 할인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누진제는 '주택용 전력소비 억제'와 '저소득층 보호' 차원에서 1974년 도입됐다. 하지만 정부가 소개한 개편안은 전기를 과소비할수록 할인금액이 커져 누진제 취지 자체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오히려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전기요금 할인액이 연간 1911억~298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7~8월에는 누진제 1·2단계 구간을 각각 100㎾h씩 확대하며 총 3611억원 비용이 발생, 한전이 이 중 90%를 부담했다. 한전 재원 부담을 덜기 위해 예산을 편성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이날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논의하는 토론회 자리에서 한전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비용 부담을 추가로 떠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정부는 한전이 재원을 부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며, 정부가 함께 부담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 예산 심의 통과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누진제 개편안이 마련되더라도 한전이 재무 부담을 떠안는 방향으로 결정되면 안 된다”며 “5500억에 달하는 전력 복지 재정을 비롯해 에너지 바우처·전련산업기반기금 등을 활용, 누진제 개편에 따른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전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주식회사이자 주주 입장을 대변해야 할 의무를 갖는 회사”라며 “경영 환경이 좋으면 양보하겠지만 적자 누적이 지속되고 있고, 2분기에도 재무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이사회는 추가 재원 부담에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한전이 전기요금 누진제 시행에 따른 재원을 부담할 경우, 정부가 한전을 제대로 관리·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정으로 사회 배려 계층을 위하는 것이라면 기존 '전력 복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박찬기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한전에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재원을 부담할 예정”이라며 “국민 전력냉방비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도 재원 일부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에는 110년만의 폭염으로 인해 비상조치로 누진제 개편안을 한시적으로 마련한 것이고 올해부터는 정식 제도로 도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전 약관을 개정, 요금체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 상황이 다르다”며 “(예산)관계부처와 국회에 이 같은 내용을 충실히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