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땅 아스, 아스달과 미지의 영역 이아르크 간 경계는 거대한 자연단층 '대흙벽'이다. 아스달에 사는 정복부족 새벽족과 달리 대흙벽 아래 이아르크의 와한족은 독자 문명을 형성하며 수렵과 채집으로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아르크에 펼쳐진 방대한 대지를 탐내는 새벽족 부족장 아들 타곤(장동건 분)은 대흙벽을 내려갈 수 있는 도르래 승강기를 개발하고 평화롭던 와한족 마을은 청동 무기와 말로 무장한 새벽족 병력에 무참히 짓밟힌다.
tvN 새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청동기 초기 시대로 추정되는 가상의 무대가 배경이다. 가상이긴 하나 청동기 무렵 도르래 기술을 이용한 현대식 승강기나 텐트형 막사, 쇠사슬, 등자 등은 결국 고증 논란으로 이어졌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최고(古) 도르래 모습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다. 벽 너머로 통을 올려 보내기 위해 도르래를 사용하는 모습이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 담겼다.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이집트 피라미드나 영국 스톤헨지,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 등 고대 대규모 건축물에도 도르래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르래는 원통형 바퀴에 끈이나 체인을 둘러 힘의 방향을 바꾸거나 물체를 이동시키는데 필요한 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회전축이 고정된 고정도르래는 힘의 방향만 바뀐다. 현대의 엘리베이터는 줄 한 쪽에 무게추를 달고 반대 쪽에 사람이 타는 공간을 연결한 고정도르래가 주로 쓰인다.
같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회전축을 고정하지 않는 움직도르래가 필요하다. 대신 물건이 이동한 거리는 끌어당긴 줄 거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를 조합한 복합도르래는 힘의 방향을 바꾸면서 물체를 들어올리는 힘을 줄일 수 있다. 1792년 수원 화성 축조를 위해 다산 정약용이 개발한 거중기 역시 복합도르래가 사용됐다.
아스달 연대기에 등장한 승강기에도 복합도르래 기술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승강기 상단 가로 기둥에 설치된 고정도르래가 힘 방향을 바꾸고 탑승부 지붕의 움직도르래와 연결한 구조다.
한국판 '왕좌의 게임'을 표방한 아스달 연대기는 제작비로 무려 540억원을 투입했다.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 등 인기 스타 출연으로 상당한 기대감이 고조됐다.
모든 드라마가 반드시 과학적·역사적 고증을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서 갖는 위상을 생각하면 몰입도를 저해하지 않을 정도의 고증은 갖췄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