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과도한 게임 이용을 게임이용장애로 등재하기로 결정,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WHO의 국제질병분류(ICD) 결정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질병분류(KCD)로의 등재로 수용해야 효과를 발휘한다. 보건복지부는 통계청을 통해 게임이용장애를 게임 중독이라는 질병으로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2025년에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정은 순탄할 수 있을까. 게임 관련 89개 단체는 게임중독반대공대위를 꾸려 결전 태세에 들어갔다. 게임 중독을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해묵은 갈등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도 과도한 게임 이용을 알코올이나 마약류 중독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묶어 보려 했지만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다. 결국 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10년이 넘는 시도와 반대로 대립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복지부와 의료업계는 공격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는 방어했다. 게임업계는 이번 WHO의 질병 등재 결정 과정에서 국내 의료업계의 어떤 숨은 작업이 있었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불신의 골도 깊다.
국무조정실이 나섰다.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중재한다고 한다. 그럼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까.
먼저 의료 분야 종사자들로부터 속 시원한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다.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면 왜 게임이용장애라 하고, 중독됐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번 ICD-11의 게임 중독 진단 기준은 지난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APA)가 제시한 DMS-5(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5) 기준과 유사하다. 당시 APA는 이 기준으로 볼 때 '기초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게임 중독이라는 독자 질병의 존재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DMS는 미국에서 만들지만 세계 각국에서 정신장애 진단과 분류에 사용하는 권위 있는 지침이다.
WHO는 이와 유사한 진단 기준을 근거로 과도한 게임 이용 행위를 질병으로 봤다. 질병이라고 판단한 어떤 새로운 근거를 확보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이 결정을 놓고 해외 일군의 정신장애 전문가들은 아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우리는 의료 전문가가 말하는 찬성이나 반대의 근거를 충분히 접하고 싶다.
필자는 짧지 않은 기간에 현장에서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해서 역기능 상태에 빠진 사람을 접했다. 이들에게서 게임 집착에 대한 강박관념, 이용 조절 실패, 이어진 일상생활의 곤란한 상황을 봤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었다. 게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과 정상인을 구별할 수 있는 기초연구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임 과의존 상태에 빠졌을 때 병원이 진단하고 처치해야 하는 상황은 우울, 불안 등 다른 정신 문제와 겹친다. 문제는 어떤 게 근본 원인이고, 어떤 게 그에 따른 결과물인지 그 선후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신신경과에서 자주 사용하는 약물치료법도 아직 개발돼 있지 않은 상태다.
'중독'돼 게임에 빠져서 부모의 속을 썩이던 많은 아이가 어느 틈엔가 '정상 생활'을 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생활한다. 물론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하는 청소년기에 지나치게 게임에 빠지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다. 분명한 것은 게임을 아주 많이, 지나칠 정도로 하는 것과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어려운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 상태는 다르다는 것이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한때 게임에 빠진 아이들에게 질병이니 중독이니 하는 낙인을 미리 찍어 놓고 봐야 하는가. 다행히 우리는 몇 년의 유예 기간이 있다. 감정이 충돌하는 야수의 시간이 아니라 과학 분석을 토대로 합리 타당한 대안을 찾는 시간을 보내자.
고영삼 동명대 교수·4차산업혁명연구센터장 yesk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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