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이사회가 한 차례 의결을 보류했던 여름철(7~8)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최종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재무 부담에 따른 경영진 배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정부 정책을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은 부담이 더 크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한전 고위 관계자는 26일 “임시 이사회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관련 기본 공급약관 개정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이사회는) 의결을 또 한 번 보류하는 것도 전혀 의미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임시 이사회는 이번 주말(6월 30일) 안으로 열릴 예정”이라며 “이제는 최종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마지막까지 노력해 달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한전 이사회는 전기요금 개편 이후 손실 보전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중이다. 이사회는 일회성 예산 지원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 지속가능한 제도 지원을 담보로 한 '조건부 가결'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 폐지 또는 완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는 전기 사용량이 월 200㎾h 이하인 누진 1단계 구간 소비자를 대상으로 월 4000원 한도로 요금을 깎아주고 있는데 이를 폐지하거나 절반인 2000원 한도로 조정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한전은 연 2000억~4000억원 손실을 메울 수 있다.
국회 관계자는 “한전 이사회는 정부에 필수사용량 공제 폐지를 지속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 혜택 일부를 폐지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상황을 고려해 내년 총선 이후 필수사용량 공제 폐지 또는 완화하는 정부 지원책 가장 유력하다”며 “양측 협의가 지연돼 이번 주 임시 이사회가 열리지 않을 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이럴 경우 지난해처럼 여름철 전기요금 인하분을 소급 적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전 이사회는 정부 보유 지분이 51%가 넘는 공기업이라는 점을 고려, 사회적 책임 등을 감안해 어쩔 수 없이 정부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불만은 여전하다. 불특정다수가 아닌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계층을 위한 지원책이 마련됐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지난해 111년 만의 폭염으로 7~8월 전기요금을 한시 완화했는데 이로 인한 한전 손실은 3000억원을 웃돌았다. 이후 1년 동안 근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지난해와 같은 '선심성 개편안'을 되풀이하는 건 근시안적 행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전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국민 복지 차원에서 전기를 마음 편히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었는지 의문”이라며 “지난 1년 동안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기요금 구조를 개선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