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남북경협 시대를 꿈꾸다]<상>4차 산업혁명 전사 키운 北…IT 인력 20만명 추정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2001년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북한 IT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강연했던 당시 사진을 공개, 설명하고 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2001년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북한 IT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강연했던 당시 사진을 공개,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가 2015년에 한 말이다. 로저스는 최근 “미국과 일본 투자자는 이제 북한으로 갈 것”이라며 북한 투자 가치를 재차 강조했다. 미국 월가를 대표하는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통일 한국이 40년 안에 독일과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만달러로 치솟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 잠재력을 본다면 장밋빛 환상만은 아니다.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북한은 10년 넘게 일반공학·컴퓨터과학 기술 인력을 양성해 왔다. 소프트웨어(SW), 블록체인 같은 신산업 분야의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보기술(IT) 인력은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 크게 밀리지 않는 규모다. 인건비는 국내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우리 기업이 베트남, 인도로 나가지 않고 북한 인력을 채용하면 원가 절감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중국에 이어 희토류 매장량도 상당하다.

IT 인력난에 허덕이는 국내 산업에 북한은 '가뭄에 단비' 역할을 할 수 있다. 로저스와 골드만삭스가 통일 한국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본지는 3회에 걸쳐 북한의 잠재력, 기술력 현황을 짚어 본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진단한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국내 제조업에 연결한다는 과거의 도식에서 벗어나 남북이 4차 산업혁명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방안으로 '글로벌 벤처 클러스터 조성' 방안도 제시한다. 첫 번째로 북한 내부 사정을 들여다봤다.

대북 단체 NK지식인연대는 북한 내 IT 인력이 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해 5월에 발표한 숫자와 비슷하다. 당시 연구원은 2013년 기준 북한 IT산업 종사자 수가 1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매년 1만명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4만6000명은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일하고 있다. 외화벌이는 물론 해외 시장 실무 경험을 쌓는 셈이다.

대부분 평양과기대, 김일성종합대, 김책공대 출신이다. 주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소프트웨어(SW) 기술자다. 해당 분야의 인력 규모만 놓고 보면 국내보다 앞선다. 김흥광(전 북한공산대 교수) NK지식인연대 대표는 “한국은 IT 인력이 폭넓게 퍼져 있지만 북한은 특정 분야에 집중해 있다”면서 “SW, 디자인 능력은 국내보다 오히려 뛰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인도 기업이 주관하는 국제 코딩 경연대회 '코드셰프'에서 김일성종합대, 김책공대 학생들이 수년째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SW, 블록체인, 수학, 로직 등 관련 기술은 국내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한은 자체 PC 운용체계(OS)를 쓴다. 리눅스 기반의 '붉은 별'을 개발했다. 전자상거래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2007년 '천리마'라는 첫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했다. 중국 업체와 조인트벤처 형태로 설립했다. 2015년에는 '옥류'라는 온라인 주문 플랫폼을 출시했다. 화장품, 의약품, 의류, 음식 등을 주문·결제할 수 있다.

IT에 대한 북한 정권 차원 관심도 매우 높다. 북한은 지난해 4월 기존의 '핵·경제 건설 병진' 정책을 손질하고 '과학·교육 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겠다'는 새 전략을 제시했다.

IT를 배우려는 학구열도 뜨겁다. 2001년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을 초청했다. 조 회장은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북한 IT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실무용 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2006년 북한에 IT 서적 3만권을 보냈다. 김책공대를 비롯해 주요 대학에 배치됐다. 북한 정권이 나서서 대학생에게 남한 서적을 보도록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남북이 IT를 매개로 힘을 합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치적 이슈를 제쳐두더라도 사이버 보안 문제가 선결 과제다. 북한 개발자가 코딩 작업을 하면서 트로이목마, 스파이웨어 같은 악성코드를 숨겨둔다면 사실상 찾아 낼 방법이 없다. 해킹 우려 탓에 입지가 좁아진 화웨이 사례를 참조, 남북이 서로 신뢰할 만한 합의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

조 회장은 “남측 기술력에 북한 인력이 더해지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면서 “다만 해킹 우려 불식, 북한 기술력 현황 파악 등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