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변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 가야 직성이 풀리고, 광고를 그대로 믿고, 손해를 봐도 참는 '과거의 소비자'는 갈수록 찾기 어렵다. 소비자 주권 실현의 선두에 서 있는 한국소비자원에 기대치가 크게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자타공인 '소비자 전문가' 이희숙 소비자원장에게도 지난 1년이 만만치 않았던 이유다. 무거워진 어깨를 실감하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 결과 소비자 권익 증진을 위한 전국 단위 조직 확립, 리콜 이행률 제고, 소비자 위해 감시 강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 중점 추진 과제는 '중소기업의 소비자 안전 역량 강화'다. 중소기업이 제조 단계부터 안전한 제품을 만들도록 도와 사업자·소비자가 상생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 소비자친화경영지원센터' 구축을 준비 중이다.
서울 송파구 소비자원 서울지원에서 취임 1년을 맞은 이희숙 소비자원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대담=홍기범 경제금융증권부장
-최근 취임 1년을 맞았다. 의미 있는 성과를 몇 개 꼽는다면.
▲오랫동안 충북대학교에서 소비자학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쳐오며 소비자 권익 증진 활동에 직·간접 관여해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전문성을 갖춘 기관장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막상 소비자원장으로 직접 업무를 수행해보니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업무범위가 넓고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커 책임이 막중함을 실감하고 있다.
그간 임직원과 합심해 소비자 권익증진을 위한 많은 일을 했다. 그 중에서도 인천지원, 울산지원을 개소·안착시켜 충북 본원 외 9개 지원, 제주여행소비자권익증진센터 등 전국 단위 조직을 구축한 것을 성과로 꼽고 싶다. 지역 소비자가 일상 소비생활에서 겪는 피해를 구제하고, 지자체·소비자단체 등과 '지역 소비자 권익증진 협의회'를 구축해 지역 소비자 이슈를 해결하는 등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기본법 개정으로 시료 수거권을 확보, 소비자 안전 이슈에 신속·공정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리콜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주기적으로 이행을 점검해 평균 리콜 이행률이 종전보다 10%포인트(P) 증가한 것도 의미가 있다. 지난 5월 법무부가 주관하는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공공기관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 역시 기억에 남는다.
-올해도 반이 지났다. 남은 기간 추진할 과제는.
▲최근 행정안전부의 공공 빅데이터 분석 사업으로 소비자원과 국민권익위원회의 '빅데이터 연계 분석'이 우선 순위 과제로 선정됐다. 소비자원·권익위 민원 데이터 등을 분석해 급증하는 민원, 소비자 이슈 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국민 불편·관심을 도출해 선제 대응하겠다.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으로 수집되는 위해정보를 국민 안전 관계 부처에 개방해 정부 위해요소 조기 탐지와 대응방안 마련, 소비자안전 정책 수립을 지원할 방침이다. 소비자 교육 전문가 양성과정 교육 대상자 수 확대, 프로그램 체계화도 계획하고 있다.
'청렴민원행정'을 강화할 계획이다. 소비자원이 국민 신뢰를 받으려면 민원 업무부터 청렴의식을 내재화해 공정·청렴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청렴민원행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구체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청렴·반부패 문화 확산을 위한 실천 운동을 전개하고, 소통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민원 대응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소비자가 소비자원에 기대하는 수준이 높다. 우리에겐 강제 집행 권한이 없기 때문에 되도록 사업자와 소비자 간 합의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청렴에 더 신경을 쓴다. 민원 접수시 소비자에게 사건 처리 관련 금품·향응 요구 거부권, 금품·향응 제공 요구사실 신고권 등이 있음을 미리 고지하고 민원사건은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청렴미란다'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복지도 중요하다. 소비자원 직원 절반가량이 상담·피해구제·분쟁조정 등 민원 담당이다. 이들의 스트레스를 가능한 풀어주고 격려하려 노력한다. 작년까지는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도 민원 담당 직원은 쉴 수 없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전화 상담 등이 어려움을 민원인에게 정중하게 알리고 직원들이 쉬었고,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소비자 권리도 중요하지만 근로자인 소비자원 직원 복지도 중요하다.
-소비자원이 제품 비교 정보를 제공하는 '비교공감'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소비자 활용과 공신력이 낮다는 지적, 비용 문제 등으로 소비자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공신력이 낮다거나 소비자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엔 동의하지 않는다.
소비자원은 국민 참여를 거쳐 한 해 동안 비교 분석할 제품을 미리 선정한다. 물론 비용 문제 때문에 자동차 등 고가 제품은 대상에 넣지 못하지만, 되도록 소비자가 많이 원하는 것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실제 소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의류건조기, 냉장고 등을 평가·분석해 발표한 것이 대표 사례다. 사업자는 최적의 조건에서 발휘할 수 있는 성능을 알리지만 소비자는 실제 사용 조건에서 성능이 궁금하다. 기온이 낮은 겨울철 베란다에 놓은 의류건조기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느냐 등이다. 소비자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교공감은 영향력이 크다.
공신력도 높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신뢰성을 담보하지 않는 정보는 발표할 수 없다. 제품을 선정하면 전문가가 참여해 시험을 설계한다. 결과를 두고 해당 기업, 전문가, 소비자 단체 등이 함께 점검한다. 해당 기업이 결과에 동의하지 않으면 재시험 한다. 소비자원 시험 결과는 해외 바이어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객관적이지 않은 정보로 사업자를 곤란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비교공감 수준을 미국 컨슈머리포트 정도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비교대상 품목, 제품 수가 외국에 비해 다양하지 못한 점은 개선·보완해야할 부분이다. 올해는 품질비교 시험·평가 품목 수를 작년(16개)보다 3개 늘렸다. 보다 많은 양질의 소비자정보 생산을 위해 전문인력과 시험설비, 시료구입 확대 등 시험·평가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와 지속 관련 예산 확보를 협의해 나가겠다.
-소비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다. 이를 반영해 소비자원이 진행하는 사업이 있다면.
▲최근 인스타그램, 블로그, 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이 활성화되며 새로운 거래 플랫폼으로 급부상했다. SNS를 통한 거래는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청약철회가 가능하고 정보제공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댓글, 메신저 등을 통한 폐쇄적 거래방식으로 이를 준수하지 않는 사업자가 많다.
소비자원은 관련 소비자 피해를 집중 점검해 사업자의 부당행위 발견 시 자율시정을 권고할 예정이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신유형 소비자 문제에 선제 대응할 방침이다.
온라인 소비자 거래는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국경을 초월한 국제거래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국제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소비자 불만·피해는 국가 간 거래관행과 법규 차이, 언어장벽 등으로 해결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예방이 중요하다. 소비자원은 국제거래 소비자 불만,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제거래 소비자포털'을 운영 중이다. 해외직구 주요 품목 국내외 가격 비교, 반품·차지백 서비스 등 이용 가이드 제시, 사기의심 사이트 발굴·공표 등에 노력하고 있다.
-소비자 권익 제고를 위해 소송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소비자원 차원 계획은 무엇인지.
▲소비자원은 사업자 거부로 조정이 성립하지 않을 때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려계층, 소액사건 소비자의 권익 실현과 분쟁조정결정 실효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비자소송지원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원여부를 결정하고, 소송지원변호인단을 통한 소송 대리 등으로 소비자를 돕고 있다.
작년에는 사회적 배려계층, 소액사건 소비자에 해당하지 않아도 변호사 등 전문가 조력이 필요한 금융, 보험, 의료 분야 사건은 소송지원이 가능하도록 '소비자소송지원제도 운영지침'을 개정했다. 최근에는 거주 지역에 상관 없이 소비자가 원활한 소송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 소재 변호사를 추가 위촉했다. 소송대리 활성화를 위해 소송지원 예산 확대, 내부 전담 변호사 충원도 계획하고 있다.
-임기 2년차가 시작된 만큼 계획하는 것도 많겠다. 중점 추진하려는 사업이 있다면.
▲중소기업의 소비자 안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안전기준 정보 획득, 품질 관리가 미흡할 수 있다. 물적·인적 인프라 제약으로 제품 개발 전(前) 단계에서 소비자 요구를 파악하기 어렵고, 소비자 문제 발생에 적시 대응하기도 힘들다.
소비자원은 소비자 안전 침해가 우려되는 제품 유통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제조·유통 전(全) 단계의 안전관리를 지원해 소비자 안전을 확보할 방침이다. 일례로 믹서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에 미리 '소비자는 믹서기 사용 시 주로 이런 이유로 많이 다친다'는 정보를 제공하면 기업이 이를 제품 제조에 반영할 수 있다.
소비자원 내에 '중소기업 소비자친화경영지원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소비자원이 보유한 소비자 데이터를 중소기업에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품질비교 시험으로 우수 중소기업 제품을 발굴해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기능을 검토하고 있다. 센터가 기업이 지닌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 후생 증대에도 기여하는 소비자와 기업 간 '상생협력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희숙 한국소비자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한우물을 판 소비자 분야 전문가다. 1979년 충북대학교에서 가정교육학으로 학사 학위를, 198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소비자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4년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소비자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에 돌아와 1995년 모교인 충북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후학 양성에 힘쓰는 한편 각종 학술 논문과 '신용관리와 소비생활' '새로 쓰는 소비자 의사결정' 등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신용관리와 소비생활'을 교재로 한 충북대 수업은 2005년 첫 개설 후 꾸준히 인기를 끌며 강좌가 지속 늘어났다. 2006~2008년 충북대 생활과학대학 학장, 2016~2018년 충북대 본부 학생처장을 지냈다.
2004~2006년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2004~2013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위원회 위원, 2006~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표시광고심사자문위원회 위원(장), 2011~2012년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소비자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2017~2018년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작년 6월 제15대 한국소비자원장으로 취임했다.
정리=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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