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에 따른 여진이 여전하다. 21일 공식 발표 이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상조 카드'를 놓고 떠들썩하다. 그만큼 갑작스럽고 파격적인 인사였다. 한 달여 전부터 공정거래위원장에서 물러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설마 청와대 입성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것도 청와대 요직 중의 하나인 정책실장이라는 자리일 줄은. '재벌의 저격수'로 불리며 반기업 정서가 강한 인물인데다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한 김 실장이 임명되면서 기업인들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과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꺼져가는 경제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긍정보다는 부정 반응이 많다. 그렇다고 이미 인사가 끝난 시점에 “새삼 왜 김상조인가” 되물어봐야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격이다.
대신에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는 한번쯤 짚어봐야 한다. 정책실장은 대통령 비서실 소속이다. 현행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비서실을 총괄하는 자리는 비서실장뿐이다. 이를 문 대통령 취임 이 후 대통령령으로 정책실을 두고 실장 자리를 만들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당시 선례를 참고한 것이다. 상위법인 정부조직법을 위반한 행정조치라는 논란도 있지만 국정에 필요하다면 그렇게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정책실장 역할이다. 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다. 비서실 소속인 정책실도 예외일 수 없다. 법에서는 비서실 역할을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서실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정부부처와 소통하는 등 국정 운영을 위한 차질 없는 지원이 목적이다. 통치이념을 행정부처가 제대로 실현하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라는 것이다.
역할을 규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대통령 지근에 있는 비서실이 자칫 전횡을 행사하거나 불필요한 업무 혼란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문고리를 움켜 준 '왕 실장'이 대표 전횡 사례다. 혼란스런 역할은 멀리 갈 것도 없다.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경제정책 방향과 관련해 사사건건 부딪쳤 던 게 엊그제 일이다. 그만큼 정책실장은 조심스런 자리다.
김상조는 세 번째 정책실장이다. 장하성, 김수현 두 명이 그 자리를 거쳐 갔다. 평가는 엇갈린다. 그래도 선임이 있다는 건 김 실장에게는 행운이다. 훌륭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리면 그만이다. 김 실장은 공정위 퇴임 후, 정책실장 임명 후에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경제에 대해서 사견임을 전제했지만 많은 메시지를 던져 놓았다. 새로 맡은 입장에서, 더구나 일벌레로 불리는 김 실장 입장에서 의지를 다지고 포부를 밝히는 일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앞서 정책실장이라는 위상과 역할은 곰곰이 숙고해 봐야 한다. 자리를 만들고 합당한 임무를 주는 데는 그래야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다. 비서실은 직제라인에서 빠져 있는 '참모'다. 참모는 대통령에게는 직언하고 국정은 행정부를 앞세워야 한다. 참모가 부처 꼭대기에 앉아서 목소리를 높일수록 잘못된 시그널을 줄 가능성이 크다. 허수아비 장관 한 명 만드는 건 순간이다. 가뜩이나 청와대가 그립이 세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무 판단이 안서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현명하다. 그래야 대통령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행정부가 제대로 뛸 수 있다. 세 번째 정책실장마저도 헛발질한다면,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다.
취재 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