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유사한 업종의 가게가 함께 모여 있는 이유를 '집적의 경제'로 설명한다. 집적의 경제란 기업 내지 가게가 서로 인접한 거리에 입지하여 얻게 되는 이익을 말한다. 일견 집적효과는 상식 수준의 내용이기에 많은 창업자들이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실제 기업 현장의 실상은 전혀 다르다. 특정 창업가는 집적효과를 망각하고 경쟁자가 없는 곳에 블루오션이 있다고 착각해 외진 곳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자사의 직원을 빼앗길까봐 경쟁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창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사한 업종의 가게가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이 무엇인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비슷한 품목을 취급하는 가게가 함께 모여 있을 때 얻게 되는 가장 큰 이익은 생산비용의 절감이다.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부품 내지 소재가 필요하다. 이를 흔히 중간재라고 한다. 제품 제조 과정이 복잡다단해지면서 노동, 토지, 자본 못지않게 중간재를 얼마나 쉽게 조달할 수 있느냐가 기업 입지를 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려 요인이 됐다. 기업이 모여 있을 경우 중간재를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조달할 수 있다.
유사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모여 있을 경우 원료 내지 중간재를 대량으로 구입하거나 시장에서 함께 제품을 운송할 수 있어 운송비를 줄일 수 있다. 실제 금속가공업, 기계설비업을 수행하는 기업이 제철공장 근처에 입지하고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업마다 전혀 다른 제품을 만드는 경우에도 집적효과를 거둘 수 있어 함께 모여 있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패션단지이다. 우리는 동대문 일대 옷 만드는 가게가 함께 모여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단추나 옷감을 제공하는 회사를 떠올려 보자. 단추와 옷감은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일종의 중간재에 해당한다. 단추와 옷감은 의류 제조회사에서 제작하는 옷의 특성에 따라 그때그때 다양한 형태와 색깔로 제작돼야 한다. 특정 모양의 단추를 대량생산하기란 쉽지 않다. 유행이나 계절에 따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옷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옷이 다르면 단추도 그때그때 전혀 다른 형태로 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네모 모양의 푸른색 단추를 제작하다가 곧이어 작은 원형의 흰색 단추가 필요하다. 유사한 상황에 직면한 중간재를 무턱대고 많이 만들어 놓았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필요할 때마다 소량 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제품 단위당 제작비용이 높아진다.
소량생산으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의 문제점은 관련 분야의 사람들끼리 모여 집적하게 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집적할 경우 생산규모를 크게 해 생산단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딴 지역에서 혼자 단추공장을 운영하는 공장 주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인근에 있는 몇몇 의류회사의 주문에 의존해서 단추를 생산한다.
하지만 여러 의류회사가 모여 있는 곳에서 단추공장을 운영한다면 지금 당장은 해당 단추를 찾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나중에 또 다른 의류회사에서 해당 단추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자연히 제작비용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재고를 처분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중간재 납품업체를 쉽게 변경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기존 중간재 납품업체가 자신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야 한다. 이 경우에도 집적된 장소에서 회사를 운영하면 쉽게 다른 회사를 물색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처 변경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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