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나름 대책을 만든다. 종교, 생물학적 복제, 불후의 명성 등등. 가능하기만 하다면 가죽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인의 죽음은 대책이 없다.
종교도, 그가 남긴 자식이나 예술 작품도 도움이 못된다.
슬픔은 해일처럼 엄습해, 가슴 속 저지대를 채운다.
그런데 여기 대안이 있다.
영화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축복처럼 금빛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한 거실에서 남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자(마조리)는 늙고 병든 모습이다. 흰머리는 정돈되지 않았고, 거동은 몹시 불편하다.
반면 남자는 말쑥하다. 건강하고 젊다. 멋진 수트를 차려입었다.
두 사람은 긴 대화를 나눈다.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존대는 하지 않는다. 죄 반말이다. 좀더 이야기를 듣다보면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렇게 나이차이가 많은데?
여자가 남자 곁에 앉으러 갈 때 마치 유령처럼 여자의 몸이 남자의 다리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의문은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남자는 이미 죽었다. 그는 아주 정교한 홀로그램이다. 남자의 40대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런데 너무 정교한 나머지 진짜처럼 느껴진다.
이 홀로그램이 더욱 특별한 것은 인공지능에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자는 딥러닝이 가능하다.
딸과 사위는 매일 밤 홀로그램에게 남자의 과거와 여자의 과거, 두 사람의 만남,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홀로그램은 이야기를 듣고 습득하고 '내면화'한다. 그래서 다음 날 여자와 대답할 때 그들의 대화는 한층 풍부해지고 깊어질 수 있다.
영화는 계속된다.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이 홀로그램으로 소중한 사람 곁에 머문다.
홀로그램은, 아마도 5세대(5G) 이동통신 같은 것으로 연결돼 있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과거를 학습한다.
그리고 과거의 '자기 자신'과 점점 닮아간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은 전혀 공포 영화가 아니며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아주 섬찟한 느낌이 든다.
평범한 장면인데, 공포영화에 사용할 법한 음악이 나온다. 보는 이의 신경을 계속 긁어대고, 불안한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갑자기 지난 여름에 내가 무슨 일을 한지 아는 괴한이 칼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다.
영화를 보고나면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너무나 진짜 같은 홀로그램으로 죽은 사람이 곁에 머문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공포일 수 있다.
게다가 그 홀로그램에 딸린 인공지능은 제한된 정보를 토대로 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혐오감 같은 게 치밀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홀로그램과 인공지능이 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달래줄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런 서비스는 머지않아 상용화될 것이다. 그러니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