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이 우리나라 전략물자 관리 제도에 대해 연이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자국 수출 제한 정당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우리나라 전략물자 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 정부 수출 제한이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시행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일본 언론 보도가 우리나라에서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관계 확인이 안 된 주장을 연이어 보도하면서 자국 내 여론을 움직이려는 포석이다.
NHK는 지난 9일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가 화학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방송은 “(수출규제 대상) 원재료는 화학무기인 사린 등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일부 한국 기업이 발주처인 일본 기업에 서둘러 납입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일상화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전문가에 따르면 사린가스는 저순도 불화수소로도 제작이 가능하다. 순도 99.999% 일본산 불화수소를 굳이 화학무기 개발에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산케이신문과 산하 후지TV는 국내 자료를 인용해 우리 정부 전략물자 밀수출이 급증했고, 우리나라 수출관리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후지TV는 지난 10일 “한국에서 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가 밀수출된 안건이 4년간 156건이나 된다”며 “한국 수출관리 체제에 의문부호가 붙는 실태가 엿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공개된 자료는 지난 5월 17일 한 국내 언론이 조원진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기사화한 것이다. 해당 자료는 우리 정부가 전략물자 밀수출을 적발, 행정처분한 사례다. 밀수출을 파악하고 정부 당국이 조치한 사례로 우리나라 전략물자 관리 제도가 적절히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산케이신문은 11일 후지TV 보도에서 쓰인 것과 같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인용해 2016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처분 대상이 142건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는 부정 수출에 대해 형사처벌 대상이 됐는지와 개별 기업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며 “부정 수출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한국 벌칙과 처분 운용이 부실해 억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산케이신문 주장대로라면 일본 정부 전략물자 관리제도가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비교해 더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박태성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11일 “한국 정부는 공공기관인 전략물자관리원 '연례보고서'와 국회 제출 자료로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조치 현황을 공개한다”며 “미국도 무허가 수출 적발실적과 주요 사례를 공개하는데 반해, 일본은 총 적발 건수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국내 일부 언론은 11일에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했다. 이 언론은 “산업부 자료를 재검토한 결과, 불화수소는 2017년 12월 27일 베트남에, 올해 1월 3일 아랍에미리트(UAE)로 불법 수출됐다”며 “또 다른 독성 물질인 시안화나트륨은 2017년 12월 인도네시아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이 의심하는 '북한으로 우리나라 전략물자가 넘어갔다'는 내용은 싣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이미 일본 언론 의혹성 보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며 “(언론이) 추측성 보도를 하지 말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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